양들의 침묵 (1991년 作) / 조나단 드미 감독

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協 회원

잘 만든 스릴러는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다. 언젠가 언급했던 '노스페라투'가 그렇고 서스펜스의 제왕인 히치콕의 역작 '싸이코'가 그렇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1991년작 '양들의 침묵' 또한 그렇다. 공포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정서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극대화된 공포건 집단적인 최면에 의해 무리하게 조성된 공포건 인간은 그것에 반응하고 상상한다.

공포의 최고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양들의 침묵'은 스릴러 영화 속 캐릭터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두 인물, 클라리스 스탈링과 한니발 렉터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기이하고 애매한, 어쩌면 끈끈하기 까지 한 관계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보다 더 분명한 것은 영화 '양들의 침묵'은 조디 포스터가 연기하는 FBI 훈련생 클라리스 스탈링의 이야기란 사실이다.

영화는 대체로 곁가지로 새지 않고 클라리스의 뒤를 쫓아간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는 이야기의 첫 번째 전환점 사이에 감추어져 있다가, 기분 나쁘지만 호감가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무시무시한 식인자다. 그러나 첫 등장 이후 줄곧 관객들은 한니발 렉터를 향해 호감을 거두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클라리스를 좋아하고 그로인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일은 한니발 렉터는 '양들의 침묵'에서 만큼은 조연에 불과하단 사실이다. 아이스링크를 날아올라 공중 삼회전을 돌아야 하는 것은 온전히 클라리스의 몫이다.

조디 포스터가 연기하는 클라리스는 고아일 뿐 아니라 불리한 처지에 처한 순박한 여성이다.

그녀는 지금의 위치까지 오느라 온갖 고생을 다했고 아닌 척 하지만 자신감도 바닥인 상황이다.

그런 그녀를 논리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정서적으로는 결함이 있는 식인살인마 렉터 박사가 돕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들의 침묵'의 매력은 차고도 넘친다.

굳이 매력 하나를 더하자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양들의 침묵'을 본 관객들이라면 모두 한니발 렉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캐릭터 자체의 매력에서 기인한 바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인 클라리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때문에 클라리스를 '먹거나' '죽이지' 않을 것이란 것을 관객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사건의 범인인 버팔로 빌을 찾아내서 갇힌 여성을 구해내려는 클라리스를 돕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소니 홉킨스의 렉터는 따분한 사람이 아니다. 적당한 위트와 스타일을 겸비한 남자다.

그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명확한 기준과 영리함까지 갖춘 진짜 남자다.

'양들의 침묵'의 전개와 한니발 렉터의 등장, 그리고 살인마 버팔로 빌의 집 실내 장면은 정말로 섬뜩하다.

더불어 희생자의 목에서 고치를 찾아내 뜯어내는 장면이나 경찰들이 한니발에게 뜯어 먹히기 직전,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도착을 기다리는 장면 역시 오금이 저린다.

더한 무서움은 이미 한마음이 되어 좋아하게 돼버린 클라리스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들게 되는 공포일 것이다. 마치 한니발 렉터가 느꼈던 똑같은 감정 말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