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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청론] 아동에게 '성'을 논하라

2012-09-18기사 편집 2012-09-17 22: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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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변호사

성폭력 관련 기사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송강호의 대사처럼 우리나라는 '강간의 왕국'인가.

친한 변호사 한 분이 아동 강간범을 변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변호사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형사사건보다 민사사건을 처리할 때에 마음이 더 편했지만, 그래도 형사사건을 변론하는 것이 더욱 보람되다고 느꼈던 이유는, 피의자나 피고인들 나름대로 변명거리 한두 개쯤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인인 나는 의뢰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재판부에 그의 입장을 충분히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성범죄의 경우 변명거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저 인간의 탈을 쓴 발정 난 짐승의 짓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요즘에 특히나 문제 되는 것이 아동 성폭력이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어릴 적부터 수많은 성폭력과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놀이터에서 놀던 나와 친구들에게 접근해 귀엽게 생겼다면서 뒤에서 번쩍 안아 들어 올려 옷 위로 민감한 부분을 문질렀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게 성추행인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찜찜한 기분이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기분 나쁘고 더럽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이렇게 무지하게 당하지는 않았지만, 등굣길에 여학생들을 향해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들어대던 아저씨를 종종 보았다. 지금의 내가 그런 아저씨를 보았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욕을 하든지 강경하게 대처했겠지만 중학생인 나로서는 보면 안 되는 것을 보았다는 게 수치스러워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성에 대해 무지했던 유년 시절에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물론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그 인간들을 응징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분하다.

참 이상한 것은, 내가 어린아이에서 여자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적 능력을 갖추면서부터 오히려 성범죄의 대상에서 멀어졌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내가 표적에서 비켜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제압하기 쉬운 약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래 왔듯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성폭력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1년, 한 여성이 20년 전 자신을 강간한 동네 아저씨를 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여성이 강간을 당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9살이었다.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는데 1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진술이다.

'성'은 누구에게나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어서 성행위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한, 어떻게든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어 있다. 자발적으로 그러나 내키지 않는 성행위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매춘의 경우도 분명히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매춘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끝없이 추락한다.

스스로 선택한 매춘의 경우도 그러한데 강제로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라면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어린아이라면? 어린이의 성장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존중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만지지 못하도록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나는 가급적 어린아이를 만지는 행동을 삼간다. 내가 만지고 다른 사람이 만지고 그 외 모르는 사람이 만지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에게 "나는 아무나 만져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이 만졌을 때 차라리 성난 개처럼 으르렁거리라"고 가르치겠다.

아동 성폭력은 사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한 번 상처 입은 자아존중감은 회복되기 어렵다. 도처에 짐승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화학적·물리적 거세, 친고제 폐지, 처벌 수위 강화 등 각종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아이들이 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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