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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광장] 돌보지 않는 사회의 그늘

2012-09-14기사 편집 2012-09-13 20: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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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사회부장 yong@daejonilbo.com

아이들의 하루는 늘 위태롭다. '성(性) 맹수'들은 24시간 표적을 노린다. 가장 취약한 시간은 오후다. 하교 후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아동 성범죄의 60%가 발생한다.

방과 후의 귀가 시간과 학원을 오가는 시간에 맹수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하지만 방치되는 아이들은 너무나 많다. 늦은 밤도 위험한 시간대다. 오후 9시 이후에도 맹수들은 취약한 표적을 집중적으로 겨냥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맹수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아동 성범죄의 10건 중 2건 꼴은 자정부터 오전 8시 사이에 발생한다. 아이들의 하루 중에 더 이상 안전한 때는 없다.

전남 나주 초등생 성폭행사건은 오전 1-2시의 이른 새벽에 발생했다. 2008년 대구 달성군 초등생 납치·살해사건도 비슷한 시간대였다. 2010년 부상 사상구의 여중생과 2007년 경기 안양의 초등생은 저녁 시간대에 납치돼 성폭행당한 뒤 잔혹하게 살해됐다. 남과 밤을 가리지 않는 맹수들 앞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길고도 위태롭다.

안전지대도 더 이상 없다. 아동 대상 강간범죄의 10건 중 6건 꼴은 집에서 발생한다. 성추행은 주택가와 이면도로, 학교, 야외, 거리, 대중교통시설과 심지어 학원에서도 장소를 불문하고 저질러 진다. 아동 성범죄자의 5-6명은 아는 사람이고 범행의 절반은 동네에서 이뤄진다. 거주지를 포함해 사회의 모든 곳이 '잠재적 범죄 공간'이다.

방치되는 아이들은 더욱 위태롭다. 사회를 경악케 한 아동 성범죄는 피해 아동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소외돼 있고 돌봄으로부터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5년 충북 옥천에서 연쇄 살인마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 당한 여중생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고령의 할아버지와 함께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근 이웃 주민에게 살해 당한 경남 통영의 초등생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며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가족은 생계에 바빠 아이를 충분히 돌보기 어려웠다. 전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놓은 사건들이 수 년 전부터 해마다 터져 나오고 있지만 사회적 돌봄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의 안타까운 비보는 끊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를 일이다.

아동에 대한 방임은 사회적 책임이지만 사회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하다. 빈곤과 결손, 방치는 아동 성범죄의 가장 취약한 요인이 되고 있지만 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 지표를 들여다 보면 우울하고 참담하다. 가족 구성을 보면 아동·청소년이 친부모 밑에서 생활하는 경우는 86%로 나머지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만 있거나 재혼 가정 등 정서적 결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9-11세 아동의 4분의 1 가량이 방과 후 3일 이상 어른없이 혼자 지내거나 형제, 자매와 보내고 있다.

빈곤층의 방치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공층은 7.8%, 상대 빈곤층은 11.5%로 아동 8명 중 1명 꼴은 빈곤 환경에 노출돼 있다. 거의 매일 방과 후에 혼자 있거나 형제, 자매끼리 있는 빈곤층의 아동·청소년은 10만명에 달한다.

성맹수들은 사각지대를 노리지만 사각지대는 너무 광범위하다. 돌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아이들에게 24시간은 늘 두렵고 집과 거리는 늘 불안하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회적 돌봄이 촘촘하게 짜여져 하지만 현실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이런 저런 사정과 환경에 의해 사회적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동·청소년이 110만명이나 된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아동 성범죄는 인재(人災)이고 그 책임은 사회 모두에게 있다.

우리 지역의 실태를 들여다 보면 위기의식이 팽창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2세 이하의 아동 중에서 방과 후에 혼자 또는 아동끼리 보내는 아동의 비율은 대전과 충남북이 가장 높다. 전국 평균치가 1.9%이지만 충북이 2.3%, 대전과 충남이 2.1%로 전국 시·도 가운데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아동 수는 대전·충남북을 모두 합쳐 1만4000여명이나 된다.

대전·충남북에서 아버지 또는 어머니만 있거나 부모가 없이 조부모 밑에서 생활하는 아동의 가구 수는 16만 가구를 헤아린다. 이 중 상당 수의 아동은 빈곤과 결핍에 노출돼 있다.

아동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내놓는 '엄벌주의'가 근원적인 처방이 될 것인가에는 매번 회의감이 따라 붙는다. 성범죄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은 성맹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지 모른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혼자 되지 않게 사회적 울타리를 겹겹이 만들어 주는 일이고 이를 위해선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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