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진리가 땅속 깊이 있거나 하늘 높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끔 깨달을 때가 있다. 가장 평범한 예로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 이것은 진리다. 이 진리를 어기고 함부로 말을 뱉었을 때에는 이미 그 말은 칼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입(口)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口是禍之門)이요, 혀(舌)는 몸을 자르는 칼(舌是斬身刀)"이라 하였다.

하고 싶은 말 한번 시원하게 했다가 죽은 사람 얘기를 해 보자! 자유주의 사상이 전 유럽을 휩쓸었던 19세기 초, 러시아의 자유주의 세력들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혁명을 모색하고 있었다. 드디어 1825년 12월 26일,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는 날 이들은 혁명(데카브리스트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시도는 니콜라이 1세에 의해 단 두 발의 포탄 발사로 진압되고 말았다.

이때의 주동자 콘드라티 릴레예프(Kondraty Ryleyev)라는 사나이는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대에 오른 그의 목에는 밧줄이 걸리고 그는 허공에 매달려 죽는 순간에 우연히도 밧줄이 끊어졌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목숨을 건졌다. 이 순간 그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이를 지켜보던 군중을 향해 외쳤다. "보세요. 러시아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밧줄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듭니다."

그는 밧줄이 끊어져 살아남는 사형수는 그것이 하늘의 뜻인 것으로 여겨 살려 주는 당시의 관례에 따라 자신도 살아 나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니콜라이 1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정말인가? 그러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되겠군!" 그 즉시 사면장(赦免狀)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그 이튿날의 교수대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설화(舌禍)도 이런 설화가 없다. 가히 구화지문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잦은 말실수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친구지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통화 내용이 안철수 교수에 대한 사퇴협박이냐, 아니냐로 정가가 시끄럽게 된 것도 결국은 말의 실수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겠는가? 거론된 안 교수의 뇌물제공과 여자관계에 대한 사실 여부 또한 사퇴협박 여부와 함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 못지않게 평범한 진리로 우리는 "시간은 진실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시간의 신(神) 크로노스를 사람의 형상으로 그릴 때에는 언제나 날개 달린 노인으로 그리고 있는 것을 본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듯이 빠른 시간을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이어야 비로소 허위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가면을 벗기려니 그의 손에는 거대한 낫이 반드시 쥐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볼까 싶어 한쪽 손에는 모래시계를 쥐고 있도록 한 그림도 있다.

실제로 16세기 이태리의 화가 브론치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allegory:우의(寓意)'라는 그림을 보면 시간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 주고 있다. 비너스와 큐피드의 에로틱한 그림이 중앙에 위치해 있고 울부짖는 한 노파와 남녀의 탈과 비둘기, 꽃을 든 어린 소년과 좌우 손은 뒤틀리고 하체는 온통 무시무시한 뱀과 맹수의 다리 같은 것이 달려 있는 어린 소녀가 있는 그림. 사뭇 어지럽다.

전문가의 해석(iconography)으로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욕망과 기만과 질투와 위험 같은 것이 뒤따르는 거짓사랑의 실체를 시간의 신이 밝혀 내는 장면의 그림이라고 한다. 이 그림이 말해 주는 결론은 결국 어느 경우이건 거짓은 시간의 신에 의해 파헤쳐지고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얼마나 평범한 진리인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를 속이려 한다. 지금 국민들이 그 실체적 진실에 목말라하며 기다리고 있는 정가의 각종 의혹들도 시간이 모든 것을 밝혀 주리라 믿는다. 저축은행의 로비 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는 정치인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공천헌금의 대상은 누구이며 헌금 액수는 얼마인가? 통합진보당 출신 몇몇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맨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순수와 이슬로 포장된 안철수 원장의 실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벗겨지고 있는 것을 본다. 누가 감히 시간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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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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