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순 교육문화부장 yss830@daejonilbo.com

지난 2009년 개봉된 영화 '실종'(문성근·추자연 주연)은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배우 지망생 동생을 찾아 나선 언니가 외딴 마을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60대 촌부와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촌부가 납치한 여인을 언니가 발견할까봐 양계장 분쇄기에 갈아 사료와 섞어 닭모이로 던져주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모티브로 한 영화 '추적자'에서도 사람을 토막 내 정육점의 쇠고기, 돼지고기처럼 걸어 놓는 등 인간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후 시신을 무참히 훼손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오원춘의 엽기적인 행동은 공포 스릴러 물이 스크린 밖으로 옮겨진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최근 엽기적이고 끔찍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제 존폐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형법 41조에서 형벌의 종류에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시키고 있다.

사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사형수는 군인 2명을 포함해 60명이며, 이들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07명으로 알려졌다. 사형은 지난 1997년 이후 15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원칙적 측면에서는 법무장관이 법을 지키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사형수 60명을 위해 한 해 13억2000만 원가량의 예산을 쓰고 있다. 여성 등 20명을 쇠망치로 무참히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유영철, 안양 초등생 혜진이와 예슬이를 성추행한 뒤 토막살해한 정성현, 부녀자 10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 등을 먹여 살리는 데 거액의 국민혈세가 사용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사형제 폐지가 바람직하다. 궁극적으로 범죄 없는 사회가 된다면 사형제는 불필요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er)에서 처럼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Pre-Crime)을 통해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예측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범죄자들을 가려내 체포한다면 사형제도 자체가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속에서나 존재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흉악범이 사람을 죽였다 해서 국가도 그와 똑같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며, 그 범죄의 대가가 꼭 사형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흉악범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해 감형 없는 종신형을 대안으로 제시 하기도 한다.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 과거 유신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사법살인을 저지른 것도 사형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흉악범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그나마 사형 집행이 억울하게 숨진 원혼을 위로하고, 법치(法治)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고귀한 생명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가해자가 뉘우침없이 뻔뻔한 행동을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초등생 혜진이와 예슬이를 살해해 사형선고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된 정성현은 교도관들이 인권을 침해했다며 서울구치소장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은 자신이 직접 쓴 A4용지 8장 분량의 소장에서 '법과 원칙'을 수차례 강조하며 자신의 인권을 주장했다고 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들'에게 '인권'이라는 고귀한 단어는 가당한 일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남 보성에서 젊은이 4명을 연쇄 살해한 70대 어부 오종근은 '사형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지난 2008년 항소심 재판도중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는 2007년 8월 바닷가에 놀러온 19세 대학생 커플을 자신의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 뒤 남자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여대생을 성추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여대생마저 바다로 내던졌고, 3주 뒤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성 2명을 더 살해했다.

사형제가 있다고 해서 후진국이고 비(非)인권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도 33개 주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집행은 주로 피해자 가족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야만적으로 비춰지면서 법 집행이 제대로 안될 때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법에 호소하기 보다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 할 수도 있다.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인 복수, 사적인 단죄에 나선다면 사회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는 모순을 되풀이 하지말고 사형제를 존치하든 폐지하든 납득할 만한 액션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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