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한·일 간의 갈등이 자못 가파르다. 무례와 비례가 도를 넘는 듯하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갈등의 열기가 증발해 버릴는지 알 수 없을 만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쯤 해서 한·일 양국이 냉각기를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일 간의 외교적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 어느 한 나라에도 이익될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얽혀 있을 때에는 원점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간에 가로놓여 있는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양국은 냉철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과거사에 대한 문제다. 과거사의 참혹한 기록들을 밝은 햇볕에 말려 산화시키느냐 아니면 그 어둡고 괴로운 기록들을 지우려는 노력도 없이 영원한 갈등의 핵으로 간직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독도의 문제도 위안부의 문제도 징용인의 문제도 생체실험의 문제도 어느 것 하나 과거사 아닌 것이 없다. 일본이 그 과거사를 멍에처럼 지고도 태연한 척한다면 동북아시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로의 행보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과거사에서 좀 더 자유스러워져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험을 스스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참회와 반성과 용서를 비는 행위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것은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닐까?

지금 일본의 각료 일부가 2차대전 당시 1급 전범들의 위패가 놓여져 있는 소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참배 행위가 국내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제국주의 시절의 악독한 비인간적 만행(蠻行)에 대한 향수이거나 예찬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차기 지도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라는 사람은 아예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있으면 대라"고까지 큰소리를 친다. 미국의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것은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는 말로 그 실체를 인정한 국제적 시각에 대해서마저 얼마나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보면 한층 더 뚜렷하다. 엄연히 1905년 국권 침탈 과정에서 일본 사람도 모르고 한국 사람도 모르게 슬그머니 시마네(島根)현에 편입시킨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 과거사를 깡그리 부정하자는 속셈이다. 오히려 과거사를 미화시키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과거사의 망령에 시달릴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모든 현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직보원(以直報怨)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어떻겠습니까(以德報怨)?" 그러자 공자는 대뜸 원한을 덕으로 갚으면 "베풀어 준 은덕에는 무엇으로 갚을래(何以報德)?"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베풀어 준 은덕에 대해서는 덕으로 갚아야겠지만(以德報德) 원한에는 올바른 도리(直)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以直報怨)." 아무리 일본이 우리에 대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못하는 옹졸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올바른 도리로 접근하는 것이 외교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이 해를 거듭할수록 독도 문제에 대한 왜곡의 강도를 높여 가는데 한국의 대통령 어느 누구인들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근 일본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일왕(日王)의 방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 몇 달 무슨 단어를 쓸까 고민하다가 또 '통석의 념' 뭐 어쩌고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고 했다. 일본의 위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단다. 이는 결코 올바른 도리의 외교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양국 정부는 최근 며칠 동안 오간 감정적인 외교를 청산하고 건전하고도 이성적인 외교가 되도록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국 정부는 군사정보협정을 맺으려 시도하였다. 그런 심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양국이 함께 인류평화를 위해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시헌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