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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제국주의에 찬동한 한국영화史 파헤치기

2012-08-25 기사
편집 2012-08-24 21: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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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동원 수단 자처한 조선영화인 1930-40년대 상황·심리분석 초점

첨부사진1친일 영화의 해부학
강성률 지음·살림터·264쪽·1만5000원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해서 식민지로 삼았다. 그런데 일본의 조선 지배는 서구의 다른 제국주의 지배와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일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식민지로서의 장점이 그리 많지 않은 조선을 정복했다는 것이다.

왜 일제는 조선을 강제침탈 한 것인가? 이유는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지리적 요충지의 성격이 강한 조선을 서구에 비해 먼저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조선을 근거지로 해서 중국, 더 나아가 동남아로 향하려 했기 때문에 조선을 철저한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정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고 문화적 역량 또한 높은 조선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을 자신들의 군대로 끌어들여 전쟁터에 참전시키는 것은 강제동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교활한 방법을 선택한다. 당시 조선에서 큰 인기였던 영화를 선전매체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미 당시 파시즘 체제 아래 있던 서구 독일과 이탈리아는 일본보다 앞서 영화법을 정비해 영화를 선전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일제는 같은 목적을 위해 1940년 '조선영화령'을 실시한다.

이 책은 일본의 이같은 정책에 동조한 조선의 영화인들이 동족에게 일본의 전쟁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선전한 친일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친일 영화를 주도한 이들은 1930년대 중반 영화 환경의 변화 때 등장한 젊은 세대들로, 통제법인 영화령이 발효되면 적국의 영화인 서양 영화가 극장에서 사라져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일본의 발달된 기술이 조선의 인력과 결합해 더 좋은 질의 합작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영화보다는 일본 지방으로서의 조선 영화, 더 나아가면 아예 완전한 일본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이미 극장은 일본의 거대 배급사가 장악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이 일본 영화인이 되면 오히려 좋은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통제가 영화에 도움이 된다는 담론도 나올 정도였다.

조선 영화계의 새로운 세대들은 새로운 담론을 통해 영화계를 장악한 뒤 당시 '조선영화령'에 협조하는 논리를 담론으로 만들어 유포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일본 식민지배의 적극적인 선전 매체가 되고 만다.

이들은 징병제를 선전하는 '군용열차', '지원병', '집 없는 천사' 같은 영화로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의 첨병이 된다.

저자는 말한다. 친일 영화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뛰어넘어 인류 평화에 어긋나는 파시즘의 영화라고. 그리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중반부터 조선 영화계를 장악한 젊은 세대들이 영화미학과 산업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고 가며 국내외 정세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면서 의도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주장한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소설 '1984'에서 "현재를 통제하는 사람이 과거를 통제하고 과거를 통제하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독도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3국이 영토분쟁으로 신 냉전기를 맞고 있는 요즘이다. 식민주의의 폐해와 억압성을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의 시각에서 선입견 없이 냉철하게 다시 돌아보는 작업은 현재의 국면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신웅 기자 grandtrust@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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