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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작은 대학이 큰 대학 이긴다

2012-08-25기사 편집 2012-08-24 21: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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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묵 한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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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세계랭킹 1위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올림픽 준결승에서 미국팀에 져 결승에도 오르지 못하고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양궁에 출전한 총 40개국 중 11개국의 감독이 한국 사람이었고, 남자 단체 4강에 오른 한국을 포함한 이탈리아, 미국, 멕시코 감독들은 놀랍게도 모두 한국 지도자였다. 최고의 양궁 지도자가 비전을 가지고 교육한 결과가 빚어낸 놀라운 결과였다. 이것은 지방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나에게도 지방대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온다.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이 있을 리 없는 학생들은 이제는 다 컸으니 혼자서 인생을 판단하고 나아가야만 한다. 한밭대에서는 이런 학생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듯이 스스로 달릴 수 있을 때까지는 적어도 한 번은 잡아주기로 했다. 우리는 이것을 '자전거식' 교육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기회로 그동안의 노력을 평가받고 그 결과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는 입시제도는 정말 잔인하다. 우리 젊은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야 하겠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학점, 스펙, 어학 등에 찌들려 인생을 바라보고 설계할 겨를조차 없다는 얘기다.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비바람 속을 어떻게 지도 한 장 없이 가게 내버려 두려는가.

지난 해 봄 학기가 끝나갈 무렵 평소 주의를 끌지 않던 P군이 연구실에 찾아와 감사인사를 했다. 며칠 전 삼성생명의 대학생 인턴사원 모집 면접 시험에서 '영업'이라는 주제로 고객, 제품, 가격, 서비스 등에 대해서 짧은 글을 연결하여 자신 있게 한 시간 안에 두 장의 에세이를 작성하였다고 했다.

평소 수업시간에 과제로 특정 주제에 대한 500자 내외의 짧은 글을 쓰도록 지도해왔다. 잘할 때까지 기회를 주고 자기계발을 지도해온 교육의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성적이 평범하던 P군은 정장차림에 배지까지 달고 삼성생명 대전지부 정식사원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수업시간에 '어떠한 일이든 그것에 미칠 수 있는 자 만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들려주곤 한다. 그 때 P군은 "저는 신발을 모아요. 지금까지 200켤레 쯤 모았어요. 그런데 저는 나이키만 모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P군이 정식사원에 당당히 뽑힐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는 열정을 보고 면접관들은 그를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칭찬과 격려가 만들어낸 교육의 결실이었다.

P군이 회사로 돌아가기 전, 고정욱 작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고정욱은 태어나서 한 번도 두 발로 서보지 못한 장애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대에 입학원서조차 내보지 못했고 공대, 자연과학대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국문과 MT에서 술기운에 던진 '장애인은 경험이 부족하여 작가가 될 수 없다'라는 동료의 잔인한 한마디를 들었다. 그러나 '나보다 장애인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라고 마음 먹은 후, 장애인관련 동화, 소설 등을 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180권이 넘는다. 그는 장차 장애인 인권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반드시 노벨문학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P군 벌떡 일어나 돌아가면서 "우리 팀에서도 공대출신은 저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알고보니 인턴십에서도 정식사원이 되고 나서도 줄곧 지방대 출신, 공대 출신 등으로 적잖이 무시를 당했던 모양이다. 그는 장차 반드시 지점장까지 오르겠다는 포부를 남긴 채 떠났다. 학생들에게 비전을 찾아가는 등대식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얼마 후 ETRI의 서울대 출신 연구원을 통해 자신의 후배도 이번에 삼성생명에 어렵게 합격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같은 회사에 취업된 P군이 떠올랐다. '한밭대가 서울대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세계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양궁 지도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선수를 지도하니 한국이 동메달 따기도 버거운 현실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보지 않았는가?

지방에도 잠재적 능력을 충분히 가진 학생들이 있다는 믿음과 최고 수준의 교수가 최고의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용기를 줄 수만 있다면 머지않아 P군처럼 서울대를 이기는 지방대 마크를 단 학생들이 수 없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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