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노래는 감동의 진폭이 큰 예술 장르다. 흡입력이 강한 마법 같다. `나가수`에 출연해 `여러분`을 절창한 임재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불러 온 국민을 전율케한 박정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 듯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모 방송국이 방영해 화제가 됐던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84세 할머니 단원의 `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며 코끝이 찡했던 순간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어르신의 노래 속에는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나가수`와 `청춘 합창단`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감동의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어쩌다 케이블 TV 화면에 그들의 모습이 비치면 그때의 감동이 여전히 되살아 난다. 그들이 온 국민을 대상으로 걸었던 마법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마법 바이러스는 국민합창 운동에 옮겨 붙었다 경향 각지에서 합창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더니 마침내 대전에도 합창 바람이 상륙했다. `화합의 하모니 대전 시민합창제`란 이름의 청춘합창단 축제다. 다음달 3일 막이 오른다. 세 달 전 동(洞)별로 42개 동네 합창단 구성을 마무리됐다. 단원수가 적게는 30명-55명으로, 전체 합창단원 수를 합치면 1400명에 달한다. 단원들은 삼복염천의 폭염도 잊은 채 교회, 자치센터 등을 빌려 맹연습에 돌입했다. `대전 스타일` 합창 하모니는 이렇게 다듬어지고 있는 중이다.

직업과 연령층도 각양 각색이다. 3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로 구성된 혼성합창단, 3040 청장년합창단도 있다. 여성합창단이 있는가 하면 남성합창단도 있다. 이들은 첫 만남이지만 나이, 체면, 품위는 벗어 던지고 노래로만 소통한다. 노래가 좋아서 얼떨결에 참가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고 소통의 기쁨도 맛보았다. 오래 품고 간지해온 꿈이기에 공명(共鳴)과 울림은 강렬하다. 비록 기성 합창단보다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전해지는 감동의 무게는 조금도 가볍지 않다. 부족한 구석을 열정으로 떠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색깔을 달리한 42개 합창단 연주에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게 한다.

대전의 동네합창단원들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 되찾은 열정과 꿈으로 날줄을 삼고, 설레임으로 씨줄을 삼아 엮어내는 하모니는 많은 시민들에게 활력소가 될 것이다.

청춘합창단이 그랬듯 노래는 나이 때문에 잊고 있던 꿈을 일깨워 주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이미 소진된 에너지를 재충전 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 이쯤 되면 합창 실력이나 순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합창의 열기는 문화도시 대전을 만드는 데 민들레 홀씨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합창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예술장르가 아니다. 여럿이 함께하고, 지휘자는 단원들의 개성을 녹여 조화를 이뤄내야 비로소 심금을 울리는 `하모니`가 연출된다. 맛깔스런 하모니가 없는 합창은 노래를 하는 사람은 물론 듣는 사람에게도 진한 감동을 전해주지 못한다. 감동 바이러스가 없는 메마른 합창은 무미건조하다. 단원들이 합창의 핵인 지휘자와 함께 심금을 울릴 내공 쌓기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합창 운동이 정착되기 위해선 관(官)의 냄새를 덜 풍겨야 한다. 스스로 좋아서 하고, 그것을 즐기는 시민이 많을수록 참다운 문화가 뿌리를 내린다. 조급한 마음에 아궁이 불을 쑤석거리면 불씨마저 꺼져버리듯 문화도 그렇다. 거창하게 문화도시니 특수시책이니 행정용어로 덧칠을 하면 순순한 맛을 잃는다. 대전시는 합창의 하모니가 내년에도 계속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면 멍석 깔아준 것조차 잊어야 한다. 그게 문화예술행정의 모범답안이다.

올 여름 내 대전 곳곳은 42개 동네 합창단원의 합창 소리가 이어졌다. 단원들은 난생 처음 합창을 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배웠다. 긍정 바이러스는 합창 선율을 타고 시민들에게 전달돼 함께 공감하면서 핵분열이 일듯 에너지를 축적해 대전의 문화 경쟁력을 견인할 것이다. 이웃간 소통을 가로막았던 불신을 해소하고 단절의 벽도 무너트릴 것이다.

감동에 목말라 감동결핍증을 호소하던 시민에게는 힐링의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어찌 알겠는가? 대전의 동네 합창단이 동기부여가 돼 세계적인 성악가가 태어날지. 3대 테너 중의 한 사람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동네교회 합창단에서 성악가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다는데.

올 가을 대전시민합창제 덫에 걸려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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