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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역사의 한 시점에서 볼 때 절대로 불가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종종' 일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됐던 독일이 1990년 서독을 중심으로 한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됐다. 이를 신호탄으로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연방의 12개국이 1992년 1월 1일 독립함으로써 소련연방은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학자들은 독일 통일이나 소련연방 해체의 원인들을 관점에 따라 분석해 내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결코 일원론적이지만은 않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내부적인 변화와 외부적인 국제정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이라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민족종교임을 자처하는 증산도의 흥미로운 해석이 있다. 증산도는 남북대치상황을 씨름판으로 본다. 그런데 이 씨름판에는 구경꾼이 있는데 러시아·중국·일본·미국이 대표적이다. 결승전에 앞서 상품으로 황소가 씨름판을 한 바퀴 돈다. 씨름판에 황소가 출현했다는 것은 씨름판도 곧 끝이 날 것이란 전조다. 1998년 6월 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고 정주영씨는 이때 남북한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굳이 증산도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씨름판·황소·통일의 의미가 의미심장하게 겹치게 만든다.

문제는 씨름판의 구경꾼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중국·일본·미국의 이해관계는 첨예하다. 남북한이 통일하겠다는데 겉으로야 외교적 발언으로 환영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주 복잡한 방정식을 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찬성 또는 반대라는 해답이, 그럴 리야 없지만 무책임하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풀이가 나올 수 있겠다. 4명의 구경꾼이 씨름판을 잘 마무리할 수도 망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통일을 위한 4개국 협조는 상생이 될 것이라는 외교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의 상황은 협조는 고사하고 우리를 비롯해 러시아·중국·일본 등이 상호간 국경문제로 복잡다단하다.

당진의 기지시줄다리기는 400년 전통을 지닌, 주민화합으로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다. 당진시는 기지시줄다리기를 경색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통일의 장으로 이끄는 물꼬로 삼자는 취지에서 통일줄다리기팀을 신설했다. 지방자치단체가 통일과 관련된 행사를 기획한다고 해서 가능성을 애써 축소할 이유는 없다. 또 물론 통일줄다리기가 성사됐다고 해서 금방 통일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작은 물꼬는 될 것이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교집합이다. 결과가 주목된다.

오융진 지방팀 부국장 yudang@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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