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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청론]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2012-08-21기사 편집 2012-08-20 20: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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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 장터만의 매력 유통업계 상생철학 부재 아쉬워

첨부사진1김은주 변호사
나는 대전 유성구 장대동에 있는 유성 5일장을 자주 이용한다. 유성시장은 4일, 9일 장이다. 매월 4, 9, 14, 19, 24, 29일에 장이 선다는 의미이다. 주차공간이 넓지 않고 냉난방시설이 없어 대형마트보다 쾌적하지는 않지만,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생선이나 채소, 과일 같은 농수산물의 경우 재래시장의 것이 확실히 더 신선하고 저렴하다. 대형마트에서 농수산물을 구입하여 집에 돌아와 거추장스런 포장지를 벗기는 순간 시들시들하고 매가리 없는 모습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재래시장은 화려한 겉포장으로 눈을 현혹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재래시장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서구에 있는 한민시장과 동구에 있는 중앙시장을 자주 다녔다. 한민시장은 걸어서 20분 넘는 거리였고 중앙시장은 시내버스로 30-40분 이상 소요되는 거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생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는 내가 칭얼댈까봐 그랬는지 장에 가시면 늘 만두나 떡볶이 같은 간식으로 일단 내 배를 불려놓곤 하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앙시장 근처에 있었던 홍명상가에서 먹었던 손짜장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장에 가면 먼저 군것질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때부터 박혔나 보다. 나는 요즘도 유성시장에 가면 본격적으로 장을 보기 전에 잔치국수와 시래기국밥 또는 팥죽을 먹어 든든히 배를 채워놓는다. 가격은 놀랄 만큼 저렴해서 각 2000원 내외이다.

유성시장에 가면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대부분 철제 바구니가 달린 접이식 핸디카트를 끌고 다니는 것이다. '대체 저런 건 어디에서 사는가' 하고 궁금해했었는데, 유성시장 안에 파는 곳이 있었다. 나도 작년에 하나 장만해서 요즘엔 장에 갈 때마다 끌고 다닌다. 핸디카트 덕분에 장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전철로 출근하다 보면 핸디카트를 가지고 나오신 아주머니들이 많은 날이 있는데 그분들 대부분 '구암역'에서 내리셔서 '아, 오늘 며칠이지?' 하고 달력을 보면 영락없이 4일 또는 9일이다.

대전지법은 지난달 말경 롯데쇼핑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 13곳과 기업형 슈퍼마켓 35곳이 소속된 체인스토어협회가 대전 지역 지자체를 상대로 낸 '대규모점포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 지정 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하였다.

대전을 포함한 전국의 법원들이 모두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전국의 지자체가 거의 유사한 내용의 대규모점포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그 조례에는 모법인 유통산업발전법의 위임한도를 벗어나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박탈하고 있는 내용상의 문제와 그 시행에 있어 처분의 사전 통보를 결여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법원의 효력정지 신청 인용 결정에 따라 대형마트들은 곧바로 둘째, 넷째 주 일요일 영업을 재개하였지만, 앞으로 본안 소송을 통하여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알 수 없고 설사 대형마트들이 승소한다 하여도 지자체로서는 판결의 취지에 따라 조례를 개정하면 되기 때문에 지자체 및 정부에서 중소상인들을 보호하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앞으로 별다른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대형마트가 모법인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여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정한 영업시간 제한 또는 의무휴업일 강제 방식 자체의 적절성에 대한 근본적 고찰은 필요할 것이다.

필자도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에 딱히 갈 곳이 없을 때 시원한 마트에 가서 실컷 구경을 하고 굳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미리 사놓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그래서 지난 6월의 어느 한 일요일에 의무휴업일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마트에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날은 유성 장날도 아니었고, 다른 재래시장도 거리가 멀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면 아마 멀더라도 한민시장이나 중앙시장을 찾았을 것이다.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은 마트 쉬는 날'이라는 것이 서서히 각인되어 가고 있을 무렵 위와 같은 결정이 있어 유감이고 대형마트 측의 상생의 철학 부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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