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수 정치행정부장 hkslka@daejonilbo.com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한 뒤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권 한 쪽에서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국토수호 의지를 보여주었다며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지역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전격 독도방문후 한일관계도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지난 14일 충북 청원에 있는 한국교원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 국왕이)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할 거면 오라고 했다"고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노도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으며, 겐바 고이치로 외무성 장관도 주일 한국대사관에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유감스럽다"고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금융위기 리스크 극복차원에서 지난해 10월 합의된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 검토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란다.

이 대통령이 독도방문에 이어 일왕사과론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은 독도방문을 2-3년전부터 준비했다고 하지만 취임이후 지금껏 보여준 대일 외교정책은 분명 강공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대일관(對日觀)을 엿볼 수 있는 3·1절 기념사나 8·15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이 대통령의 대일관은 분명 유화적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직후인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면서도 "그러나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며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형성을 강조했다.

2008년과 2009년 8.15 경축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한일 과거사나 독도문제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2010년 8·15 경축사에서는 일본정부가 총리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정립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해 8·15경축사에서도 "지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미래를 위해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존의 한일관계 기조를 이어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했을 뿐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독도문제나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한일과거사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9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러일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쿠릴열도 남단의 쿠나시르섬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도 독도방문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 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할 경우 오히려 국제적으로 분쟁지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자초할 가능성이 있다"며 독도방문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또한 2008년 7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당시 일본 총리가 독도를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실을 수 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의 보도에 대한 진위여부를 놓고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 군사협정을 맺으려다가 '밀실 의결'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비등하자 슬그머니 협정체결을 연기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의 대일관은 분명히 유화적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것도 임기 말에 역대 대통령들이 실행에 옮기지 않은 독도방문을 한데다 일왕사과론까지 꺼내들었으니 또다른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런 '초강수'가 일본정부와의 외교적 마찰이나 안보관련 갈등을 우려하기보다는 돌발적 독도방문이라는 이벤트성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쇼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선을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한일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될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이번 대선과정에서 후보자들을 둘러싼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친일행적 검증과정에서 특정후보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통치자의 강한 국토수호 의지만으로 보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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