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이덕무(1741-1793)는 '사소절'에서 "남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자기 집을 망치고, 여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기는 하나, 역으로 남성의 집이 흥하기 위해서는 잘 가르쳐진 여성이 며느리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조선후기 사대부가는 여훈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호서지역 명문가들도 자녀교육이 곧 가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각종 계녀서·계제자서·부훈·규감·여훈계·가훈·정훈·자경편 등의 이름으로 된 글들이 지속적으로 찬술됐다. 주체는 물론 남성이 우세하나, 여성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여훈서류들은 여성들의 수신과 돈목(敦睦)을 강조해 여성의 가문내 역할을 크게 강조했다.

윤황(1572-1639)은 시집가는 딸에게 중국 북송 때 장재(張載, 1020-1077)가 지은 '여계(女戒)'를 8폭 병풍으로 꾸며 선물했다. 윤황은 부인 창령성씨 사이에서 5남 2녀를 두었는데, 두 딸은 각각 이정여(李正輿)와 권준(權儁)에게 시집갔다. 이 '여계'는 두 딸 가운데 한 사람에게 준 것이다.(이 병풍은 윤증가에 소장돼 내려왔는데 현재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기탁됐다.)

'여계'의 주된 내용은 '순종하라·몸을 부지런히 하라·남편을 거역하지 마라'이다. 그래야 '너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남성 저자들이 찬술한 여훈서는 '유교적 여성상'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뒀다. 남성들의 저술은 이덕무가 "시집가기 전에는 효녀, 시집가서는 순부(順婦)·숙처(淑妻), 자식을 낳으면 현모, 과부가 되거나 난을 만나면 열녀의 정조를 지녀야 후세에 여자로서 타인의 의표로 추앙받게 되고, 부인의 도덕적 기준의 처음과 끝은 오직 이것뿐이다.(이덕무, '청장관전서'30)"라고 말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경편(自警篇)'의 저자 김호연재(1681-1722)는 '엘리트 여성의 고뇌와 욕망'을 표출, 남성제작 여훈서와 같은 듯 다른 엄격한 차이점을 표출했다. 김호연재는 "아름다운 말, 착한 행실, 교화의 밝음에 어찌 남녀가 다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인륜을 밝히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가르치지 않으면 능하지 못하다"면서 여성들을 가르치지 않는 조선의 사회에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라'고 강요했고, 김호연재는 "첩은 적국(敵國)이고 집을 크게 어지럽히는 근본이다. 남자는 본래 젊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타인(남편)의 실수를 내 몸에 옮기는 것이 무슨 이로울 일이 있겠는가? 나는 다만 나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조선시대 성공한 남성들의 공부 배경에는 어머니, 할머니 등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여성들이 있다. 어린 남녀 자식들의 공부는 여성의 몫이기도 하였다. 교육받은 여성이 어머니나 할머니가 되어 교육의 주체로 자리매김되는 '가정 속의 교육자'로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양반 남성의 관직생활의 출처를 시의에 맞게 유도하여 '선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게 만드는 이면에도 존재한다.

'시경(詩經)' 소아, '사간'편에 "딸을 낳아서 바닥에 재우고, 포대기로 감싸 주며 실패를 가지고 놀게 하니, 잘못할 것도 잘할 것도 없이, 오직 술 빚고 밥 짓는 것을 의논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침이 없으리라"고 돼 있다. 조선시대에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에도 이 '주사시의(酒食是議)'가 깔려 있다.

대전 송준길가에는 수백 년 대를 이어 내려온 요리책이 있다. 바로 '주사시의'이다. '시경'의 '술 빚고 밥 짓는' 여성의 일은, 조선시대는 물론 2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여성은 잘나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못나서도 안 된다. 현대 여성들은 밖에서 직장 생활을 아무리 힘들게 하였어도 집에 들어와서는 여전히 '밥'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얼마 전 대전에서 '대전세계요리사대회'가 열렸었다. 세계 각국 2111명의 요리사들이 참석하여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도 여성보다 남성 요리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제 음식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느질'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최고의 의상전문가들의 자리에 남성들이 있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바뀌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수많은 일들이, 21세기 남성들의 취미와 희망 직업이 되고 있다. 윤황 선생이 시집간 딸에게 선물로 준 '여계' 병풍과 송준길가의 요리책 '주사시의'가 이 시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효한 콘텐츠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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