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국장 seekim@daejonilbo.com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의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중인 가운데 몇몇 주자들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어떠한 형태로든 바꾸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당내 경선에서 의제를 선점하거나 이목을 끌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 다분한데다 개헌론의 요체와 방향성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권력구조의 최정점인 대통령제에 대한 개편 논의이고 보니 언제든지 폭발력을 지닌 사안임은 분명하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다.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민주화의 열망,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에 전두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손을 든 것이다. 이른바 6.29 선언으로 인해 유신시대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비롯된 '체육관 선거'는 종언을 고했고 그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는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왜 5년 단임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을까.

혹간에서는 5년이란 시간이 대통령의 의지를 정책으로 반영하기엔 짧다고 말한다. 3년만 지나면 레임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임기중 무엇인가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게 하고 그로 인해 무리한 정책을 쏟아내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단임제는 대통령 주변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녀를 비롯해 측근들의 비리로 고개를 숙여야 했던 것도 단임제를 폐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단임제에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봐도 우리처럼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몰려있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이런 배경엔 역사적으로 왕권강화를 통한 중앙집권제나 가부장제 사회구조 등의 전통이 짙게 깔려있다. 게다가 남북 대치라는 특수성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상황도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요인이 됐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는 냉전시대까지는 유용한 권력체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21세기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국제질서는 급변하고 있고, 사회 각 분야의 요구는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갈등은 사회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대통령 혼자 결정하고 책임을 지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분산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권력에 심취한 대통령, 그를 둘러싼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비리를 저질러 줄줄이 감옥을 가는 따위의 '소소한 폐해'와는 전혀 궤가 다른 얘기다.

현재 여러 대선 예비 주자들이 주장하는 개헌론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으로 모아진다. 큰 틀의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정·부통령제 등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여야나 주자들에 따라 각기 시각차와 온도차가 엄연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로는 사회의 현안은 물론 급변하는 미래의 세계질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은 한결같아 보인다.

이들의 개헌론은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설득력과 타당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다. 주지하다시피 오는 9월부터 총리실을 비롯한 여러 부처가 옮겨오고 2015년까지 9부 2처 2청 36개 기관이 세종시로 이전을 완료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앙행정기능의 60% 가량이 세종시에 자리잡게 돼 제2의 행정수도로 거듭나게 된다. 한마디로 행정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셈이다. 차제에 외교 안보 국방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경제 사회 문화 등 기타 내치(內治)는 총리가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는 목소리는 설득력이 높다.

개헌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현 상황으로 보면 후보 경선이나 대선의 화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개헌론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그런만큼 정치권은 개헌을 위한 공감대 확산과 여론결집에 나섰으면 한다. 여야가 국회내에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민관정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선 예비후보들도 개헌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공약으로 제시하고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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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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