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유천동서 '껍데기집' 운영 고준구씨

`10명의 단체 손님 중 단 한명이라도 술을 마셨다면 출입 불가!`

`음주 판매 허용되는 1993년생(만 19세)에게도 주류 판매 금지!`

`손님은 왕이 아니다.`

이 모든 규정을 철저히 지키며 대전 중구 유천동에서 10년동안 `껍데기집`을 운영하는 `괴짜 사장`이 있다. 그의 이름 고준구(42·사진).

165㎝쯤 되보이는 땅딸막한 키에 타이트한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분주하게 연탄불을 붙이며 25일 기자를 맞이한 그는 한 때 주먹 하나로 세상을 호령했던 `복싱계의 샛별`이었다.

중학교때 소년체전 2연패를 시작으로 1989년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을 거머쥘 만큼 그의 주먹은 강했다.

하지만, 1991년 태국에서 치러진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 위기에 놓이면서 그 꿈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복싱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분노를 견디지 못한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서울에서 알아주는 한 조직의 일원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그게 최선인줄 알았다.

"평생 지을죄, 그때 다 졌다"고 할만큼 나쁜짓도 많이 했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1년6개월간의 조직생활을 끝냈다. 그리고선 무작정 영등포에 있는 한 요리학원을 찾았다. 당시 유망직종 1위가 요리사라는 한 줄의 글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요리와의 만남은 그가 제 2의 삶을 살게 된 중요한 기폭제가 됐다. 우연한 기회에 들어간 신라호텔에선 최고의 요리를 배웠고, 레스토랑에선 지역민들의 입맛과 취향을 연구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요리가 돼지 껍데기였다. 호텔에서 요리하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특제소스를 만들었다. 중독성 강한 맛에 고씨의 특이한 음식점 철학이 알려지면서 음식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의 가게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음식을 맛볼 순 없다. 적어도 껍데기를 먹기 위해선 `고준구식 법`을 지켜야 한다.

그의 룰은 주량 제한은 없지만 취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며, 교사를 험담하는 소리가 들리면 퇴출 대상이다. 아무리 술이 많이 남아있더라도 오후 11시 50분까지는 가게에서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덥다고 불평을 해도, 연탄 냄새가 많이 난다고 투덜돼서도 안된다. 국민 연료 무시하고, 서민가게에서 에어컨 바람을 원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가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윤 추구가 최고인 장사꾼의 경영 철학치고는 뭔가 앞뒤가 안맞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규정을 두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나라의 법만 법이 아니잖아요. 내 가게, 우리 손님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킵니까. 술 먹고 실수해서 좋은게 뭐 있습니까?"

마흔두살의 나이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그로서는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른 채 하루하루 술에 취해, 무의미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할수만 있다면 옆에 앉혀놓고 자신의 경험을 찬찬히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그만큼 그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애정이 많다.

가게 단골 손님을 아내로 맞아 5살짜리 아이들 둔 고씨의 최종 꿈은 아들을 판검사 만들고, 체인 사업을 하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체인점을 열어달라는 러브콜이 10년동안 이어왔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거절 사유는 `정신 박힌 놈이 없어서`였다.

인터뷰 말미 그는 "인생의 반을 잘못하며 산 사람 취재 해 뭐하냐"고 반문했지만 기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는 그 어떤 유명인보다 울림이 큰 사람이었다.

원세연 기자 wsy780@dea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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