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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청론] 선택

2012-07-24기사 편집 2012-07-23 21: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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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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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은 2세를 낳고 양육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이룩한 그 어떤 위대한 업적도 아기를 낳고 양육하는 일과 비교할 수는 없다.

감사하게도 신은 내게도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지금 내 뱃속에도 새로운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늘 쳇바퀴 돌듯 지루하던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새롭게 갱신되면서 어떤 기대감으로 즐겁기만 하다.

아이가 내 뱃속에 있으니 늘 나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거라 안심이 되는데 아이가 내 뱃속을 떠나 세상에 나오는 날부터는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근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워킹맘'으로서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애정과 관심이 모자라 갈증을 느끼고 침울해질 수도 있다. 내 어머니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워킹맘 아래에서 성장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따뜻한 아랫목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나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엄마아" 하고 불렀고 엄마는 뒤뜰이나 부엌에서 "왜에" 하고 화답하셨다.

그러면 나는 엄마한테 달려가서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쫑알쫑알 내레이션을 늘어놓았고 엄마는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재미있는 척하신 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어 하셨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낮잠을 잤다. 나는 잠이 들 때까지 엄마가 원래 알고 있는 이야기인지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옛날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한숨 자고 일어나 엄마와 시장에 가거나 동네 '마실'을 가곤 하였다. 만약 나에게 따뜻한 품성이 발견된다면 아마도 이 무렵의 기억들이 내 감성으로 스며든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분명 내 아이에게 이렇게까지는 해 줄 수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벌써 미안해진다. 엄마가 없는 텅 빈 집에 들어갈 때의 무거운 적막감이 아이를 외롭게 만들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하는 가정에서 성장하는 것이 어떤 건지 나는 잘 몰라서 불안하기만 하다. 아빠만 둘인 느낌일까.

아빠는 늘 바쁘고 고단해 보였고 집에 오면 조용히 쉬어야 하는 사람이어서 엄마보다 훨씬 어려웠는데, 나도 아이에게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머리가 아파진다.

갑자기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이문열 작가의 '선택'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시집살이를 하면서 가사에 전념하고 청상과부로 늙어 죽거나 남편을 따라 순절하는 것이 그 시대 여성들의 선택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 어이가 없다.

'선택'이라는 것은 외부적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이쪽 또는 저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쓰는 말이지, 조선시대 여성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이쪽으로 나아갔을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조선시대 여인들과 달리 지금의 나 정도면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예측했겠지만, 나는 워킹맘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내 어머니에게서 받은 관심과 애정만큼을 내 아이에게 쏟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해본다.

어머니는 나와 언니, 오빠가 성년이 되어 어머니 품을 떠날 무렵 큰 상실감을 느끼셨다. 이제 어머니 당신 곁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때 항상 하시던 말씀이 "너희들이 부럽구나"였다.

2세를 낳고 양육하는 일이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 전에, 내 어머니의 아이이므로 내 어머니가 달아주신 날개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세상 속으로 날아들 것이다.

다만, 아이에게 중요한 어느 한 시기에는 내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 곁에 늘 함께 있어 주겠노라 여지를 남겨본다. 아가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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