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마음의 숲·298쪽·1만2000원

젊은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해 소설가로 전향, 지금까지 7권의 장편소설과 4권의 소설집을 내면서 글 잘 쓰기로 정평이 난 작가 김연수.

그가 이번에는 소설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으로 더 깊어진 사유의 문장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그 문장들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작가가 체험한 사랑, 구름, 바람, 빗방울, 쓴 소설과 읽은 책, 예술과 사람 등에 관한 이야기의 집합체이다. 궁극에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우리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다. 즉, 스스로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은 달리기이지만, 달리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달리는 것은 일명 '후달리기'라고.

작가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는 어렵지만 후달리지 않기는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후달리지 않는 삶을 이뤘다면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되었다'고 여겨 볼 것을 권한다.

또한 "마라톤은 인생에 대한 은유"라는 표현이 있듯, 작가는 살면서 마주하는 인생의 벽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말고 끝까지 완주할 것을 얘기 한다. 사람들이 한 인간으로서 매 순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견디며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살아갈 때 작가는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자신 또한 이런 삶의 자세 덕분에 인생이 더 소중해졌고 삶은 희망과 맞닿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 않는다는 건 마라톤 코스를 죽을 힘을 다해 완주하고 겨우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이미 등수는 머릿속에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든 완주를 해야 한다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겨우 승리를 한 순간,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발견 하는 것.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는 것.

이처럼 작가는 평소 '지지 않는다는 말'의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한다. 바로 "희망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모든 사람이 더 많은 일을 경험하고 우연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삶을 보고 듣고 달리기를 응원한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또한 이 책을 통해 살아갈 날은 무수히 많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 앞으로 여러 우연과 마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겠지만 오늘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을 꾸준하게 이야기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행복이나 기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각을 열고 생각을 바꾸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임을 뭉근하게 알려준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짜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의 글 곳곳에는 유쾌한 무관심과 들끓지는 않지만 절대로 식지 않을 것 같은 애정이 있다. 삶에 관한 대단한 감정일수록 더욱 담백하게 담아내는 그의 섬세함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삶의 고난 앞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관용과 무덤덤함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예술"이라는 든든한 말도 잊지 않는다.

담담하면서 서정적이고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한 그의 문체에 빠져 들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들의 여린 마음이 위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위안은 결코 부담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은 위안이다. 딱 그 만큼의 위로를 해주는 그의 글이 그래서 반갑다.

최신웅 기자 grandtrust@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