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을 말하다 아직도 우리는 그를 모른다 김수경 외 9명 지음·해피스토리·268쪽·2만원

한국이 낳은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세계 미술사에 등재된 유일한 한국인이다.

1950년대부터 타계할 때까지 세계적 명성을 떨쳐온 예술가지만 그의 고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추억하는데 인색하다.

국내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수경 작가는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은 백남준의 사후 작업과 아카이브를 위해 10-15년을 계획해 그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지만 정작 모국인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학술서 하나, 논문 한편 나오지 않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아 발간된 이 책이 백남준 애호가들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 홀로 행위예술 무대에 `기행`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할 때부터 세계적 예술가가 되기까지 가야금 연주자 황명기, 건축인 김원, 아트마스터 이정성, 화가 조영남 등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도와줬던 혹은 도움을 받았던 10명이 대중에게 백남준을 바로 알리고자 그와의 추억담을 풀어놓았다. 지금의 백남준 예술을 있게한 이들이 함께 기록하고 추억한 책이기에 인간 백남준부터 거장 백남준까지 쉽게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백남준은 발명의 천재, 문화적 테러리스트, 비디오 철학자 등으로 불린다.

그는 일제 식민지던 1932년 태어나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유한 가정 덕분에 예술을 할 수 있었지만 1960년대 집이 파산하여 돈이 한푼도 없게되자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다.

비디오 아트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예술이므로 어차피 돈이 있는 사람도 자력으로 못하고 후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와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비디오 아트 거장의 현실적인 배짱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백남준의 지기지우인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다른 사람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인상이 조금도 서양화되지 않은 한국의 토착적인 것, 마치 방금 서울역 대합실 또는 청진동 빈대떡집에서 문득 만난 친구와 다름없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옷차림 부터가 전형적인 한국의 노총각 풍이었고, 기름 바르지 않고 짧게 깎은 머리는 군데군데 새치가 희뜩희뜩했고, 말할 때 침을 튀기며 간혹 빈 코까지 들이마셨고 눈은 다정스럽고 정열적이었다. 말솜씨가 독특하고 위트에 넘쳤으나, 서구적인 세련과 예리함이 없이 구수한 빈대떡 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듯한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첨단 예술가의 겉모습 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백남준 스스로도 자신은 서양에서 다 배우고 서구 사상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비빔밥과 신바람이 우리네 특징이듯 문화적 원형이 한국 태생인 한국인임을 무수히 강조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 진지하게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자한 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백남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1984년 (뉴욕시간 1월 1일. 한국시간 1월 2일 새벽 2시)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준 충격은 한국인들에게 백남준의 이름을 강하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뉴욕, 파리, 샌프란시스코를 위성으로 연결해서 퍼포먼스를 펼친다는 생각을 백남준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한국을 충격에 빠트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내용은 이렇다.

춤을 추는 여인과 어지러운 스페셜 이펙트가 흐르고 검은 화면에 보일 듯 말 듯 `Good Morning Mr.Owell`이 흐른다. 눈동자에 노래하는 사람의 입술이 뜨는 등 화면이 나오다 사회자 조지 프림턴(뉴욕)이 등장해 조지 오웰의 소설로 유명한 1984년을 맞이하고 있음을 알린다. 한참뒤 파리의 사회자와 새해를 위한 축배를 들고 화면을 프랑스로 넘긴다. 중간중간 검정 화면, 서로 대화가 통화지 않는 사회자 등 `불통`을 표현하는 화면이 나타나고 뉴욕의 존케이지 공연, 파리의 화려한 불꽃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이어지다 요들송과 함께 1시간의 공연이 끝난다.

국가적인 사건에만 쓰이는 줄 알았던 인공위성으로 예술쇼를 중계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지만 텔레비전 화면을 캔버스로 우주의 소리를 덧입힌 4차원 예술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예술이었다.

시대를 앞선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백남준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예술사의 거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대중들은 난해한 그의 작품에 때로는 감탄을 때로는 조롱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지인들은 백남준이 언제나 대중과 수용자를 깊이 생각한 최첨단 예술품의 창조자라고 입을 모은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성큼성큼 다가선 소통과 이해의 작가였다는 것이다.

백남준 기술 담당이었던 아트마스터 이정성은 그를 `변신의 귀재였지만 그 속에는 일관된 사상, 평생을 지탱해온 정신이 있는 예술가`로 평가한다.

백남준 예술 철학은 동양철학, 한국의 얼과 멀지 않았다. 그의 작품 이름에 위인이나 철학자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국사적 인물의 이름도 적지않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정약용` 이나 `선덕여왕`과 같이 한국사 속 인물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은 단순히 책 한두권만 보고는 불가능하다. 백남준은 그만큼 한국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 평생을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잊을 수 없었던 절절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에 담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세계 미술사, 특히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백남준을 마음으로 추억한 책이 사후 6주기 만에 나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시에 이제라도 인간 백남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종합 예술을 했던 백남준은 많은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그만큼 많은 파트너들이 필요했다. 이들이 책을 통해 풀어낸 백남준의 이야기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열쇠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을 다 덮어도 `우리는 아직 그를 모른다`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 그의 작품은 한눈에 이해하기에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천재 예술가를 책 한권으로 모두 알기는 힘들지만 책과 함께 예술인 백남준의 추억을 더듬다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그가 전보다 제법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최진실 기자 choitrut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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