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정 금강대학교 금강어학원 교수

나의 첫 해외 나들이는 중국 대련과 심양으로의 학술 여행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1년 정도 post doc(박사후 연구원)의 신분으로 지내던 2001년으로, 우리의 역사, 문화, 문학을 찾는 중국 속으로의 시간 여행이었다. 그리하여 중국 동북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아직 찾지 못한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문학의 조각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것을 숨기고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하는 중국 정부의 음흉한 속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에서 '동북공정'이라는 중국 정부의 역사 왜곡 정책을 여러 매체들을 통하여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만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우리를 경계하게 만들었다.

중국에서의 여행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심양에 있는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그날 나는 여행 내내 중국 정부의 괘씸하고 비양심적이며, 무례한 태도들로 인해 느꼈던 울분을 조금은 보상받는 듯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심양 박물관 입구에 서 있던 경비원들이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때 유명했던 한국 가수 이정현의 '와'라는 노래를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더니, 우리가 전시물을 구경하고 나오자 우리 옆을 왔다 갔다 하며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때 내 가슴 한 구석으로 저며 오는 찌릿한 고통을 어떻게 표현했던가? 나는 '아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정현'이라는 작고, 귀엽고, 예쁘장한 대중 가수가 한라산보다 더 크게 느껴졌고, 지금은 누구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대통령보다 국가를 위해 더 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한국 노래, 한국 가수에게 열광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오늘날의 '한류'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랬는데 드라마 '대장금'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드라마, 한국 노래, 한국 영화가 전 세계로 수출되어 외화벌이가 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동방의 작은 나라로 기억되고 있던 대한민국이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라 한국 가수들이 전세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 콘서트를 하기도 하고, 인기 있는 배우들은 해외에서 팬들과 모임을 갖기도 한다.

또 해외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단체 여행을 와서 관광 업계나 호텔 업계에 큰 웃음꽃을 주기도 한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왜 배우느냐?'고 질문한 적이 많았다.

내심 예전에 내가 영어를 배울 때 가졌던 포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포부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한국 가수를 좋아해서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요, 한국 노래를 좋아해서요'라고 대답하는 학생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묻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그들의 행동이나 학습 태도를 보면 한국어를 왜 배우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다른 어떤 언어에 비해 모음이 분화되고 발달해 있다. 그리하여 자연의 소리나 인간의 느낌을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세계의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영어는 모음의 수가 많지 않아 모음 한 개(예:A(a))가 여러 모음으로 발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거나, 자연스럽지 못하다. 외국 학생들도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는 이러한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가수, 한국 배우,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시작된 한국 사랑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 어떤 학생은 처음에 '소녀시대'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기 나라에서 한국어로 인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연락해 왔다.

또 한국어를 더 공부하기 위해 한국 대학원에 유학 온 학생도 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양국 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한류'라는 큰 물결 속에는 드라마, 노래, 영화, 가수, 배우 등 여러 물줄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한국어는 그 물줄기들이 잘 흐를 수 있도록, 잘 흐르게 해 주는 가장 큰 동력이며, 모태이다.

자그마한 시냇물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듯이 '한류'라는 거대 물결도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국어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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