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1 (1972년 作)/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느와르 장르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신기루와도 같다. 밤과 죄책감, 쾌락과 폭력, 금지된 것을 향한 열정의 장르다. 1940년대와 50년대의 프랑스 영화를 거쳐 80년대와 90년대의 홍콩 영화에 이르기까지 느와르라는 장르는 평론가나 영화광들에 의해 발굴되어 최종적으로 관객의 뚜렷한 판타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은 언젠가부터 B급 영화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걸작 느와르 영화들은 당대에 환영받은 작품들은 아니었다. 영화광 출신들의 감독세대가 극장이 아닌 필름 라이브러리(보다 정확히는 시네마테크)로 이 장르의 영화들을 보러 다니면서부터, 그리고 느와르라는 약간은 클래식한 명칭을 부여하면서부터 이 계층에 속하는 영화들은 찬사와 축복 속에서 발굴되었다. 느와르는 허구로 만들어낸 영화 줄거리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만든 영화다.

따라서 주인공들 역시 실제 삶의 따사로운 햇볕을 피해 고도로 설정된 약간은 과도한 어둠속에서 금기의 일을 진행시킨다. 그런 까닭에 영화속 인물들의 행동은 매사 진지하고 메타포적이다.

영화 대부는 사실 느와르라는 장르와 연결고리가 강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관객이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비토 돈 콜레오네를 향해 존경심까지 갖추게 만든 이 영화는 분명히 느와르의 영역을 부속장르로 취하고 있다. 대부의 특징 중 하나는 마피아의 세계를 오로지 마피아의 관점에서, 그 폐쇄된 관점에서만 다뤘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악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에게 관객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피아의 관점에서 마피아를 보라는 감독의 주문을 관객이 철저하게 따름으로써 영화를 통틀어 관객에게 비난받을 짓을 한번도 하지 않은 돈 콜레오네는 자연스럽게 그 대단한 명성을 취하게 된다.

영화 `대부`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에 관한 매우 원초적인 판타지다. 대부가 지배하는 사회 혹은 패밀리 안에서 모든 권력과 정의는 대부 한 명에게서 흘러나온다. 유일한 악당은 대부의 세계를 배신하는 자 뿐이다. 이 판타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정치와 종교를 포함해 그 판타지가 실현되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영화 `대부`의 첫 시퀀스, 딸의 결혼식과 간청자들과의 면담으로 이루어진, 교차 편집된 첫 시퀀스는 여러 가지 의미로 유명하다.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돈 콜레오네의 딸이 결혼식을 한다. 대부는 시칠리의 전통대로 합당한 간청이라면 뭐든지 들어줘야 한다. 그는 블라인드로 가려진 어두운 방안에서 자신에게 간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면한다. 이들은 모두 대부를 노엽게 한다. 첫 번째 남자는 겁탈당한 딸에 대한 복수를 간청한다.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곧바로 대부에게 오는 대신 모든 선량한 미국인이 그런 것처럼 경찰에게 먼저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대부에게 추궁당한다. 이 장면의 대사와 정서는 영화전체를 떠받치는 토대가 된다.

날이 저물 때까지 대부는 두 번의 면담이 더 있다. 이 첫 시퀸스가 끝날 무렵, 영화속 주요한 인물들의 소개 역시 동시에 끝나고, 관객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내뱉는 대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나름의 열매를 맺게 된다. 영화사가 증명하듯 실로 대단한 오프닝과 시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의 시나리오는 `권력은 한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이어진다`라는 고전적인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과 연출은 탁월하고 아름답다. 영화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사건의 실마리들은 초반부에 매끄럽게 던져져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인물과 사건은 반드시 후반부에서 열매를 맺고 싹을 틔운다. 아무것도 그냥 일어난 일은 없다. 이것이 `대부`가 갖는 시나리오의 완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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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타짜` 작가·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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