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지역 여성친화기업·정책과제

사회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있지만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특히 여성은 결혼과 임신, 출산을 거쳐 육아 등 가정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대다수 기업이 이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해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직장 내 여성의 불안정한 위치로 이어져 결국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여성근로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고 보다 안정적인 여성 일자리를 생산할 수 있는 첫 걸음으로 바로 기업의 노력에서 시작된다. 지역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해 여성친화기업으로 선정된 지역의 중소기업과 향후 정책과제 등을 살펴봤다.

◇ 일하는 여성 늘어만 가는데=여성의 경제활동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여성이 일하기 좋은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의 환경이 남성중심적인 틀에 맞춰져 있어 많은 여성 직장인이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안정적인 임금근로자의 비중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확연히 드러난다. 남성의 비중이 63.3%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36.7%에 머물고 있다. 2년 이상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일자리에 있어서도 남성이 66.4%를 차지하고 여성은 33.6%에 그쳤다.

대기업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지난해 매출 상위 28개 대기업의 정규직 직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남성의 비율이 평균 80.4%에 달하는 데 반해 여성은 19.6%라는 다소 충격적인 분석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쉬울 리 없다. 국제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10대 아시아 증권시장에 상장된 744개 기업을 대상으로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의 여성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이사회 1%, 최고경영진 2%로 일본과 함께 아시아 꼴찌 수준에 머물렀다.

대다수 직장 내 여성의 위치가 이처럼 흔들리는 이유는 결혼과 임신, 출산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5-54세 이하의 기혼여성 986만 6000명 중 비취업 여성은 408만 1000명으로 이 중 절반가량인 190만명이 일정 기간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 임신, 출산 등으로 일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이었다.

정현주 대전YWCA여성인력개발센터 부장은 "출산 후 직장으로 복귀하더라도 일과 가정이 양립되지 않으면 자녀 양육 등의 문제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대다수 여성들이 가정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을 배려하는 근무환경이 조성된 기업을 선호하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이런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여성친화기업은=대전시와 대전여성새로일하기센터(서구 용문동)는 지역의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친화기업인증·협약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친화기업이란 경영자가 여성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제도적·문화적인 환경을 구축함과 동시에 여성인재 육성에 힘쓰는 기업을 의미한다.

지난 해에는 50인 이상 규모의 기업 중 여성근로자가 20%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여성친화적인 발전가능성이 높은 10개 기업을 선정했다.

지역의 중소제조업체 3곳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여성친화기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전 대덕구 신일동에 자리잡은 '대명광학'(대표 이경석)은 첨단광학렌즈 제조회사로 전체 250여명 중 60%에 달하는 147명이 여성직원일 정도로 여성근로자 비율이 높다. 광학렌즈 생산과정의 특성상 여성의 섬세함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명광학 여성직원의 근속연수는 평균 5년 이상이고 생산직의 경우 연령수준이 40-50대로 지역 내 여성의 구직희망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대근무가 없고 업무환경이 쾌적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반도체 소자 전문기업 '알에프세미'(대표 이진효·서구 둔산동)도 전체 250명 중 여성근로자가 143명에 달한다. 실사 당시 대전본사에서 근무하는 여성직원 2명이 육아휴직 중이었고 복귀 후에는 보직을 변경하거나 탄력적으로 근무시간을 운영하는 등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직장 내 성차별이나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1년에 두차례 간호사협회를 초청해 전직원 교육도 실시한다.

휴대폰 PCB기판 제조·검사업체 '엠아이티'(대표 김문현·유성구 관평동)는 전체 직원 415명 중 306명이 여성으로 74%를 차지한다. 작업환경은 쾌적하고 좋은 편이지만 회로검사의 특성상 업무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높아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간담회를 열거나 대상자를 선정한 뒤 면담을 진행하는 등 직원 개개인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는 여성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2곳에서 3곳으로 확충하는 등 여성친화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성 일하기 좋은 곳 만들려면=많은 전문가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육아를 포함한 가정생활의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당장 극복할 수 없다면 하루 빨리 여성이 일과 가정을 균형적으로 해낼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력근무제 도입의 현실화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과제로 손꼽힌다.

탄력근무제란 직원이 업무나 개인 사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선택하도록 하고 근무 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돕고 업무의 효율성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일부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에 도입됐지만 제대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권부남 대전YWCA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은 "기업은 함께 일하는 여성직원이 아이들 양육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일과 가정 모두를 잘 해내고 있다는 인식을 충분히 갖고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탄력근무제와 같이 현실적으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산전 후 휴가제도나 육아휴직제도 등의 규정을 현실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기업 중에는 관련 규정을 갖추고 있더라도 여성직원이 사용하려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오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육아휴직제도 규정이 있을 경우 관련제도로 대체근로자 운영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여성근로자가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김예지 기자 yjkim@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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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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