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병배 칼럼 주필 cuadam@daejonilbo.com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 그는 지금 정치 야인이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이후 사실상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 그동안 뉴스에서 사라졌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가 모처럼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일 세종시 출범 행사 때였다. 방송중계 화면에 스치듯 잡힌 적이 있다. 그는 그날 특별한 의전적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좌석에 앉아 행사진행을 지켜본 것 같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심 전 대표의 입지는 왜소해진 게 맞다.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지고 정치무대에서 열외 취급을 받는 현실이 방증한다. 이는 그러나 예정된 환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물러난 그 때부터 세상인심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의 양지와 음지를 모르지 않은 이상,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총선 성적 논리로 보면 심 전 대표의 정치적 한계효용은 체감돼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선거에서 텃밭을 빼앗겼고 당 대표직도 내놨으니 그의 정치생명도 내리막길을 걷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심 전 대표의 정치적 부활 가능성을 낮게 볼 이유는 없지 않나 싶다. 여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개연성이 농후한 어떤 정치적 현상이 도래하려면 핵심적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심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겠지만 그의 운신에 따라 대선구도가 달라질 소지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시기가 무르익으면 대선주자들과 그 진영에서 심 전 대표를 두고 우군화 경쟁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

이런 가정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아보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다. 심 전 대표는 지난 4월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선거를 지휘한 수장으로서 전략실패의 책임이 있다. 불발에 그쳤지만 만일 새누리당과 선거연대를 수용했다면 의석수를 더 건졌을 것이고 그 동력에 힘 입어 자신의 세종시 선거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란 평가가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마다하고 자력으로 선거전에 임했고, 결과적으로 양 거대정당의 대선 전초전으로 변질된 프레임 싸움을 극복하는데 역부족을 드러냈다.

이런 선택에는 중요한 포인트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심 전 대표가 그 때 한쪽 편에서 섰더라면 의석은 몇 개 더 보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마다했으므로 그는 어느 진영으로부터도 정치적 채무가 없으며 반감 살 일도 만들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당 대표로서 일종의 `배임` 소지가 있다. 당의 이익을 외면한 셈이니 뒤집어 말하면 손실을 끼친 것이다. 이런 가설도 정석대로 선거를 치른 원칙의 문제 앞에선 초라해짐은 물론이다.

중요한 건 단위 선거구별 1등을 다투는 지역구 선거에선 졌지만 심 전 대표 주머니 속엔 총선 득표율 성적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의미 있는 수치의 충청 표심이 연말 대선에서 그의 정치적 선택과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보수·진보 양자구도로 고착화될 경우 대선 승리의 매직 득표수는 기십만 표로 결정 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대선 승부처라 불리는 충청권에서 일 개인이 상당한 지지표 동원력을 확보하고 있다면 승부는 여기가 시작이자 끝일 수 있다는 논리가 세워진다.

심 전 대표의 현실적 입지에 관한한 당 대표직을 승계한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 이회창 전 대표와 중첩되거나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리가 없지 않으나 이 대표와 이 전 대표 두 사람은 심 전 대표와는 사정이 미세하게 다르다고 봐야 한다. 요컨대 심 전 대표가 당적은 유지하고 있지만 여야를 상대로 정치적 행보 면에서 자유로운 편이고 국민중심당을 창당한 이후 지방의회에 진출시킨 지지 세력이 잔존해 있는 것도 자산의 일부다. 이들이 결집해 대선에서 지지후보를 탐색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 협상 채널을 누가 맡겠는가.

심 전 대표는 세종·대전·충남권 총선에서 패한 패장이다. 그런데도 대선 정국에서 그의 몸값이 상승세를 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건 역설이지만 현실이다. 충청 출신 인사들이 19대 국회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진영논리, 소속 정당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심 전 대표는 그런 불편함이 이미 해소돼 있는 사람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보수·진보 진영 양측에서 `심심(沈心)`을 얻기 위해 대선 연대 제안서를 보내오지 않을까 전망하는 이유다. 문서 수발 길목을 지키는 일은 전적으로 심 전 대표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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