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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광장] 기초연구의 한국적 문화를 정립하자

2012-06-15기사 편집 2012-06-14 21: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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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경제부장 yong@daejonilbo.com

한국은 노벨과학상에 대한 국가적 콤플렉스가 적지 않다. 노벨과학상을 225개나 독식한 미국은 그렇다 치고 일본은 모두 1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나아가 일본은 향후 50년간 3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선 중국과 대만, 인도 등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중국의 경우 중국 국적은 아니지만 세계 곳곳의 화교 중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7명이나 된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노벨과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6개 국가 중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노벨과학상 지표를 보여주는 예다. 노벨과학상이 한 나라의 기초과학의 질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격과 국가 과학역량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제로'라는 점은 우리 기초과학의 현주소를 다시 성찰케 한다.

한국이 노벨과학상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를 가늠케 하는 지표가 SCI(과학기술논문인용인색)논문 건수와 피인용도(highly cited)이다.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피인용도가 매우 중요하지만 한국은 질적 저하를 자인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 SCI논문 건수가 세계 12위이지만 피인용도는 지난 2003년 이후 5년째 30위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국내 SCI 논문 1편의 평균 피인용 횟수는 3.44회에 불과했다. 국내 SCI급 학술지의 논문 피인용 횟수는 더욱 떨어진다. 2010년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SCI 논문은 3만5623편이지만 논문 한 편당 평균 피인용 횟수는 0.37회에 그친다. 양이 아니라 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지혜가 절실한 배경이다.

그런 때문인지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가 2010년 40조원을 돌파했지만 '기초과학 부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기초과학 투자의 지속적인 확대와 신진과학자의 육성은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그동안 단기적 성과에만 급급해 경제발전 도구로서 과학기술 발전을 추진한 선진국 추격형 R&D전략에서 벗어나 선도형, 창조형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기는 타당하다. 단기적인 응용과 개발에 치중돼왔던 연구개발 정책의 방점을 장기적인 기초· 원천 연구의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기초과학의 획기적인 육성과 진흥을 위한 다양한 담론들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분야의 관치주의와 조급한 성과주의, 이로 인해 노정되는 잦은 평가와 지나친 간섭, 논문 수에 대한 집착 등 정량적 평가의 몰입, 중장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투자의 부족 등 기초연구의 저변 미흡에 대한 반성과 논의들이 부쩍 확대된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나라의 기초연구를 포함해 과학분야 연구에서의 '문화'가 아직까지 정립돼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정부가 18개 이공계 국책연구소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과 성과 미흡, 방만한 운영이 통폐합 추진의 이유이지만 당장 과학자들은 "창의력과 자율성을 말살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해외의 과학기술 두뇌를 유치해 자율과 창의를 부여함으로써 과학기술 국부를 이루자는 당초 취지가 퇴색되고 성과와 효율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관료적 통제가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국책연구소 통폐합 이후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지도 의구심이 든다. 이 역시 기초연구를 포함해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한국적 문화'가 부재한 탓은 아닐까.

노벨과학상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개인 호기심에 근거해 선택한 주제의 중시, 장기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미국과학재단의 독립성 유지 등이 기초연구 추진의 기본 틀과 철학이라는 점은 새삼 시사점이 크다. 우리의 경우에도 자율과 독립성의 보장, 중장기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 잡무로부터의 해방, 공동연구 여건의 조성, 젊은 과학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연구환경 지원 등이 기본 틀로 정립돼야 한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때 마침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 기초연구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충청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추진된다. 과학벨트는 기초연구의 한국적 문화를 차근차근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자 새로운 모태이다. 그러다 보면 머지 않아 과학벨트를 통해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배출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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