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

1946년. 물에 강한 자석을 갖다 대고 뭔가를 기다리던 그들은 그토록 보고자 했던 신호가 보이자 환호성을 지른다. 원자핵 내부의 구조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 불타던 필릭스 블로흐 박사와 에드워드 퍼셀 박사는 외부 자기장을 걸어주자 갈라진 핵스핀의 에너지 차이에 딱 맞는 라디오파가 흡수되는 핵자기공명(NMR)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라디오에 우리가 듣고 싶은 방송의 주파수를 맞추면 그 방송이 들리는 것처럼 자석 속의 원자핵도 일정한 라디오 주파수가 맞으면 신호를 보이는 것이다. 이 공로로 이들은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원리는 이제 필수 의료 장비로 자리 잡은 자기공명영상법(MRI)으로 응용되고 있다.

폴 로버터 박사와 피터 맨스필드 박사는 MRI를 개발한 공로로 200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발견된 이 핵자기공명 현상은 일반인에게 친숙한 의료적 응용뿐 아니라 기초과학에서도 분자구조 규명에 필수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초기에는 매우 간단한 분자에만 응용되던 것이 이제는 질병 치유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분자의 구조 규명에도 응용되고 있다. 이 공로로 1991년에는 리하르트 에른스트 박사가, 2002년에는 쿠르트 뷔트리히 박사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노벨상 외에도 간접적으로 핵자기공명 현상에 힘입은 노벨상까지 생각해 보면 이 작은 발견 하나가 수십 년에 걸쳐 기초과학뿐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질문을 던져 보자. 1946년에 핵자기공명 현상을 처음 발견한 그 과학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 현상을 그토록 보고자 했던 것일까? 그 현상만 발견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50년 후에 의료진단에 필수적인 MRI로 응용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연구한 것이었을까? 아니, 아니, 아니다. 순수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는 확신하건대 그들의 가장 큰 동기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연구가 미칠 파급효과 때문에 연구에 매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구한 것이고 그 연구 결과들 중 하나가 결국에는 미래에 자기들도 예견하지 못한 큰 파급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동기 때문에 과학자가 되었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 이끄는 것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한다. 적어도 필자가 학위과정에 있었을 때는 연구의 동기는 지적 호기심이라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고 자부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리고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국민의 세금이 늘어나면서 점점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게 어디에 어떻게 쓰일 수 있지요?"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면 기자들이 항상 던지는 이 메인 메뉴는 단기적인 응용보다는 지적 호기심에 의해 연구한 과학자들에게는 살짝 당혹스런 질문이다. 재치 있는 과학자들은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그 연구결과가 먼 미래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를 낙관적으로 상상해서 이야기해 주고 독자들은 그 연구결과가 당장 자기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며 만족해한다. 그 연구가 가능하도록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 연구결과의 실질적인 유용성을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응용과 순수기초. 사회가 원하는 목표와 지적 호기심 사이의 갈등. 이것은 비단 일반인들을 대할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있다. 예전에는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한 후에 누가 "그거 어디다 쓰는 거지요? 그거 왜 연구했지요?" 하고 물어보면 품격이 떨어지는 질문이라고 치부했지만, 요즘은 학회에서도 흔히 듣는 질문이 되었다. 오히려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창피해하는 분위기다. 학문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순수와 응용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면이 많은 현대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회에 미치는 목표와 유용성이 눈에 보이는 연구만이 가치 있는 연구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은 유용해 보이지 않는 순수기초과학 연구가 수십 년 후에 어떻게 파급효과를 미칠지 예견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부족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순수기초과학이 미래의 응용과 산업의 반석이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자에게 창의성의 근간이 되는 지적 호기심을 발휘할 자유를 주기보다는 모든 연구에 눈에 보이는 유용성만을 요구한다면 이것은 마치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에게 당장 돈을 벌어오라고 종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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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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