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학년도 수능-비문학

지식의 본성을 다루는 학문인 인식론은 흔히 지식의 유형을 나누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식의 유형은 '안다'는 말의 다양한 용례들이 보여 주는 의미 차이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예컨대 '그는 자전거를 탈 줄 안다'와 '그는 이 사과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에서 '안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전자의 '안다'는 능력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절차적 지식'이라고 부르고, 후자의 '안다'는 정보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표상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며, 자전거를 탈 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자전거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그저 넘어지거나 다치거나 하는 과정을 거쳐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될 수도 있다.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면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라'와 같은 정보를 이용해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도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게 된 후에는 그러한 정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 자전거 타기 같은 절차적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정보를 마음에 떠올릴 필요는 없다.

반면, '이 사과는 둥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둥근 사과의 이미지가 되었건 '이 사과는 둥글다'는 명제가 되었건 어떤 정보를 마음속에 떠올려야 한다. '마음속에 떠올린 정보'를 표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지식을 표상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떤 표상적 지식을 새로 얻게 됨으로써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하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표상적 지식은 절차적 지식과 달리 특정한 일을 수행하는 능력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표상적 지식은 다시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경험적 지식'과 '선험적 지식'으로 나누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경험적 지식이란 감각 경험에서 얻은 증거에 의존하는 지식으로, '그는 이 사과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가 그 예이다. 물리적 사물들의 특정한 상태, 즉 사과의 둥근 상태가 감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입력되고, 인지 과정을 거쳐 하나의 표상적 지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감각 경험을 통해 직접 만나는 개별적인 대상들로부터 귀납추리를 통해 일반 법칙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 세계의 일반 법칙에 대한 지식도 경험적 지식이다.

한편, 같은 표상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2+3=5'를 아는 것은 '이 사과가 둥글다'를 아는 것과는 다르다. '2+3=5'라는 명제는 감각 경험의 사례들에 의해서 반박될 수 없는 진리이다. 예컨대 물 2리터에 알코올 3리터를 합한 용액이 5리터가 안 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 명제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감각 경험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 지식이 선험적 지식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경험 이외에 지식을 산출하는 다른 인식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수학적 지식이 그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고 믿는다.

1. 위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①'앎[知]'이란 어떤 능력이나 정보의 소유를 의미한다.

②절차적 지식은 다른 지식 유형의 기반이 된다.

③표상적 지식은 특정한 수행 능력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④경험적 지식은 표상적 지식의 일종이다.

⑤감각 경험의 사례를 근거로 선험적 지식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문제읽기를 통해] 지문 범위는 전체, 평가 항목은 일치/불일치, 유형은 부정입니다. 주어 위에 단락 번호 쓰고, 술어 위에 단락 번호를 작게 쓴 뒤 둘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게 답이 되는 것입니다. 수능과 사설 모의고사의 차이는 세련됨과 완성도에 있는데, 일치/불일치 문제에서 수능은 어느 한 단락으로 쏠리는 그런 일을 없습니다. 각 단락별로 분산되어 있죠.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정답은 ②번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①번 답지를 보면 '앎'은 '지식의 유형'이니까 1단락, 술어부는 '능력과 정보 소유' 역시 1단락. 일치하죠? ③번 답지를 보면 주어부 '표상적 지식'은 3단락, 서술어부 '능력 아니다'도 3단락. ④번 답지를 보면 '경험적 지식' 4단락, '표상적 지식'은 3단락, 4단락, 5단락에 나오니까 일치. ⑤번 답지를 보면 주어부인 '감각 경험'은 5단락, 술어부 '선험적 지식' 또한 5단락, 따라서 일치하죠? 답은 ②번인데, 주어부의 '절차적 지식'은 2단락에 나옵니다. 그런데 '지식의 기반'이란 술어부는 논점 일탈이죠.

2. 밑줄 친 말이 의미하는 바가 표상적 지식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①나는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을 알아.

②나는 세종대왕을 알아. 그분은 한글을 창제한 분이시지.

③우리 아저씨만큼 개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아직 못 봤어.

④내 동생은 2를 네 번 더하면 8인 줄은 아는데, '2×4=8'은 모른단다.

⑤퀴즈의 답이 '피아노'인 줄 알고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했어.

[문제읽기를 통해]어휘의 문맥적 의미를 물어보는 문제는 밑줄 친 부분의 앞뒤에 주목해서 풀어야 합니다.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표상적 지식이 아닌 것을 물어 보았으니까 '절차적 지식'을 찾으면 되겠죠. 절차적 지식을 다룬 2단락과 가장 가까운 내용이 답일 텐데, 개를 다룰 줄 안다는 건 개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므로 답은 ③번입니다.

3. ㉠으로부터 ㉡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전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귀납추리는 일반 법칙에 기초해 있다.

② 귀납추리는 자연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 준다.

③ 귀납추리는 지식의 경험적 성격을 바꾸지 않는다.

④ 귀납추리는 지식이 경험 세계를 넘어서도록 한다.

⑤ 귀납추리의 결론은 전제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문제읽기를 통해]이제 정말 어려웠던3번 문제를 봅시다. 문두에 나온 '생략된 전제'라는 평가 항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귀납추리와 연역추리의 차이를 알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물론 그걸 몰라도 문제는 풀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지문 속에서 답의 근거를 찾아볼까요? 이 문제는 지문 안보고 문제만 보고도 찍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볼까요?

[지문읽기와 문제풀이를 통해]정답은 ③번임을 알 수 있습니다.㉠과 ㉡은 모두 4단락에 있습니다. 4단락의 키워드는 '경험적 지식'입니다. 그러면 경험적 지식과 관계있는 게 답이겠죠? 만약에 선험적 지식과 관계있는 답지가 나온다면 그건 절대 답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경험적 지식은 '감각'이고, 선험적 지식은 '경험'이 아닌 것, 즉 경험을 넘어서는 것으로 선험적 지식을 얘기한 ④번 답지는 절대 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①번 답지는 일반 법칙이 아니라 감각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땡! ②번 답지는 '자연에 대한 지식'으로 논점 일탈이죠? ③번 답지는 경험적 성격을 바꾸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게 정답이겠네요. 어렵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사과 박스의 많은 사과들을 꺼내 봅시다. '첫 번째 사과=동글다', '두 번째 사과=둥글다', '세 번째=둥글다'는 것은 각각의 사과를 본 경험입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일반화한 것 '사과는 둥글다'는 명제는 앞서 감각 경험과 일치합니다. 단지 이 말을 어렵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⑤번 답지는 맞기는 한데 ㉠과 ㉡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지는 않아서 땡! 절대 명심할 것은 언어영역의 정답은 내 머릿속이 아니라 반드시 지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휘력 tip

☞병렬적(竝列的) 2006. 2008 수능. 나란히 늘어서는 방식의. 또는 그런 것. →사건이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 소설에서는 사건의 병렬적 구성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부연(敷衍) 2004 수능. 덧붙여 알기 쉽게 설명을 함, 또는 그 설명. →제시된 개념을 부연하여 설명한다.

예) 제 의견에 부연해서 인사팀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분석(分析) 2002, 2003, 2008 수능. 얽혀 있고, 복잡한 요소를 풀어서 개별적인 요소나 단순한 개념으로 나누어 의미를 명료하게 함. →④ 국어의 음절 구조를 분석하여 위치에 따라 올 수 있는 요소가 제한됨을 제시하고 있다.

예)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동맹 휴학을 겁낼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의 분석과 판단에 중점을 둬야 할 거라고 생각해.(이병주, 『관부 연락선』)

☞비평(批評) 2003, 2008 수능 사물의 옳고 그름과 아름다움, 추함을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 →④ '보쟁'의 작품에 대한 당시의 비평

예) 평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하여 예리한 비평을 했다.

☞상정(想定) 2008 수능. 어떠한 정황을 가정적으로 생각하여 단정. →위 글의 글쓴이가 상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질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예) 이 우스꽝스러운 상정을 남들이 일소에 부칠지라도 그때의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상정이었다.(윤후명, 『별보다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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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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