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 작별 칼라 파인 지음·김운하 옮김·궁리·328쪽·1만5000원

그녀의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사였던 그가 치명적인 약물을 자신의 팔에 꼽고 차가운 시신으로 변한 채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젖어 들었지만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자살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며 거짓말을 해야 했다. '자살 유가족'은 그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에 앞서 자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했다.

저자 칼라 파인은 작별 인사도 없이 생을 마감해버린 남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 자살 유가족 모임에 든다. 그 곳에서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슬픔을 극복하고 자살 유가족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다.

책은 다양한 사연을 전하며 자살 유가족이 겪어야 하는 깊은 고통을 이야기하고 전문가들의 조언과 이론을 통해 그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후 자살에 관한 수많은 서적, 논문, 자료, 에세이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지만 자살 유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죽음의 종류가 다르다고 슬픔의 무게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질병 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이들의 유가족은 타인과 울며 애도하고, 고통을 나누며 슬픔을 극복해 가지만 대다수 자살 유가족은 주변의 부정적 시선에 슬픔을 숨기고 쉬쉬하며 살아가야 한다.

자살자들은 극한의 고통에 다다른 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존엄을 잃게 된다. 자살 유가족들은 두 가지 면에서 고통 받는데 먼저 스스로가 주는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 오랜 시간동안 함께 살아왔으면서 가족을 혹은 자신만 남기고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서 겪는 수치심,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고립감 같은 감정들이 그것이다. 저자도 그랬듯 실제로 많은 자살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전의 시간을 반복해 재생한다. 그러면서 '이때 만약 이렇게 했다면'하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통의 올가미로 옥죈다.

이들의 슬픔을 가중시키는 것이 주변의 시선 같은 외부적 요인이다. 유가족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살의 원인에 집착하거나 그 뒷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 온갖 추측성 기사로 신문지면과 TV화면을 장식하는 언론, 자살한 사람이 생기면 '가문이 저주받았다'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집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장 심한 경우는 자살 유가족에게 책임과 비난이 쏠리는 경우다. 자살의 징후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가족을 무신경하게 보내버린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 원인제공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파인은 말한다. 도움을 구하라고. 가족, 친구도 좋고 종교에 의지해도 좋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도 좋고 그녀가 그랬듯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상처를 치유해가는 것도 좋다. 결국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끔찍한 고통을 가슴에 묻은 채 살지 말고 나누라는 것이다. 또 매몰차게 떠난 이들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자살이라는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폐허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남아있는 자들이 있다. 우린 이들을 자살 유가족이라 부른다. 죄인 아닌 죄인들, 머릿속과 가슴이 텅 비어버린 사람들.

최정 기자 journalcj@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정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