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목원대 총장

이 땅의 운명은 참으로 모질다 아니 할 수 없다. 유사 이래 900여 차례의 외침을 받고서도 반만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한 나라로서 꿋꿋이 서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알렉산더의 제국이나 로마제국, 몽골 제국처럼 도저히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강국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동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인 우리 대한민국은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 그것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버텨왔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가 오늘 날까지 이렇게 서 있게 된 데에는 수많은 순국선열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자랑스런 선열들을 조상으로 둔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은 그분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무가 있음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호국보은의 달인 유월이면 더욱 그렇다. 후손들이 그분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분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모든 것이 묻히고 사라질 것이다. 순국선열의 정신이 기억되지 않는 나라는 그저 땅덩어리에 불과하다. 현충일은 그분들의 업적과 정신을 낱낱이 기억하는 날이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아예 현충일을 추모일(Memorial Day)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 그 이후 수많은 다른 나라에서 치렀던 전쟁에서 쓰러진 자국의 병사들을 기억하는 데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이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이국의 전쟁터에서 쓰러진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고국으로 모시는 데 남다르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엔 그들의 그런 노력 중에 함께 발굴된 우리 국군의 유해가 멀고 먼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일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소중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그 고귀한 희생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6월이면 우리 대학도 한 소중한 영혼을 추모한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그분이다. 그는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고등학교를 마친 후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1944년 미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1948년부터 진해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민간인 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인들에게 함정 운용술을 가르쳤으며, 1948년 한국의 해안경비대 창설에도 기여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생인 동시에 이스트 브렌트리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극동지역에서의 경험을 학술적 연구와 접목하기 위한 열의에 가득 차 있는 전도유망한 대학원생이었고, 교수들도 그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새로이 부임한 교회의 목사관은 그와 가족에겐 너무나 훌륭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한국전에 참전하기 위해 그는 이 모든 걸 포기했다. 선교사로 봉사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친구의 나라 한국이 전쟁 중에 있는데 자신이 그냥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성경구절이 그의 결심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는 미 해군에 복귀하면서 미군 중에서 자신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고 한국의 지리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꼭 한국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의 눈과 입이 되면서 인천상륙 작전에 참여하였고, 상륙 후 본대보다 앞서 적진의 상황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아 활약하다가 지금의 은평구 녹번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28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분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이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 대학의 창립 이사로 재직하신 그의 부친 윌리엄 얼 쇼 박사는 자랑스런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대학의 목동 캠퍼스에 '윌리엄 해밀턴 대위 기념 예배당'을 지었다. 우리 학교가 이전하면서 그 교회는 헐리게 되었지만 도안동 언덕 위에 높이 지어진 지금의 교회는 여전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2010년 6월 우리 대학은 그분의 지극한 한국 사랑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녹번리에 세워진 기념비와 똑같은 기념비를 바로 그 교회 앞마당에 세웠다. 이런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껍데기뿐인 존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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