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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호국정신을 넘어 일류 문화 국가로

2012-05-31기사 편집 2012-05-30 21: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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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준 건양대 교양학부 교수

매년 6월 6일이면 현충일이 돌아온다. 현충일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드러내어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이에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되살펴보고자 한다.

'현충'이란 충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러면 '충'의 의미는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들도 조국에 충성하다가 죽었고, 일제 군국주의자들도 조국에 충성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세계인은 오늘날에도 독일의 나치 재건을 우려하며 일본의 호국 신사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한다. 그러면 그들의 애국과 우리가 바라는 애국은 무엇이 다른가.

충은 흔히 충성, 충직, 충정이라고 쓴다. 성(誠)이란 진실하다는 뜻이고, 정(貞)이란 곧은 마음이며, 직(直)이란 사욕과 거짓이 없는 마음이다. 따라서 모두 비슷한 뜻인데, 문제는 무엇을 위한 진실이고, 곧음이며, 거짓 없는 마음인가를 되살펴 보아야 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한국 선비들의 충과 일본 사무라이들의 충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충직과 충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기는 한국의 선비도 일본의 사무라이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무라이는 단지 계약에 의한 주종 관계를 맺은 직업인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납치되어 간 조선 유학자들이 전파한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일본 사무라이 가치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과 태도는 한국 선비가 추구한 충과 결정적으로 차별되는 것이다.

한때는 사무라이 문화가 서구인에게 꽤 인기 있었다. 서구인들은 사무라이 가치관을 통하여 인간관계에서 돈이나 계약관계를 넘어서는 충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적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1905년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제26대, 1901-1909년 재임)는 일본인이 쓴 '무사도'란 책을 읽고 서양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인간적 충성에 기반한 일본 무사 문화에 심취했다. 그는 외교 정책에 이러한 일본 이미지를 반영하여 카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용인한 바 있다. 그 후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결국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일본 사회에서 무사에게 요구한 규범들은 주군에게 충성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적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엄하게 다스리며 부정과 비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한국 선비들의 가치관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 지향점은 달랐다. 한국의 선비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 어질고 바른 세상을 위해서이다. 선비도 자기를 절제하고 청청한 마음을 갖는다. 그 이유는 흐트러지지 않는 결연함으로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자행하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서이다. 선비도 효충을 인격의 기본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공동선을 구현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선비는 어떤 개인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멸사의 충성이 아니라 충성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조직이 추구하고 공유하는 공동 가치에 대한 충성을 의미 있게 생각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한국인의 충의 정신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춘추의리론으로 집약되었다. 조선 선비의 학문과 정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를 배격하고 인의를 수호하려는 강력한 춘추의리론으로 재확립한 점이다. 그 정신은 '중화(中華)를 존중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친다'로 요약된다. 이때의 중화는 중국이라는 한 국가가 아니며, 이적이란 중국 변방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다. 중화란 인의를 추구하는 집단이며 이적은 인의를 저버리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가 아무리 고난을 당하게 되어도 생명을 애호하는 인의의 세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강렬한 문화의식이다. 춘추정신은 구한말 항일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얼이며 한국 문화의 힘이다. 한국 선비는 한 국가와 민족, 종교와 인종을 넘어서 인류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인류애를 추구했다. 한국인이 추구한 충정과 충직이란 강한 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이 아니라, 약한 자에 대한 예의와 상호 존중의 신뢰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동반자에 대한 충정과 충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과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민족과 국가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바칠 가치가 있는 자랑스런 국가이다. 이에 현충일은 아까운 젊음을 바친 호국영령들에 대한 위로와 감사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중한 생명을 바쳐야만 했던 그 진정한 이유를 되새기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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