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청론- 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송준길 간찰
송준길 간찰
'늦게 든녀가 오거늘/ (당신의) 편지를 보고 기뻐하되/ 석대의 병이 또 났는가 싶으니/ 갔던 놈에게 물으니 하도 끔찍히 이르니/ 매우 놀라워하네/ (석대의 병이) 요사이는 어떻소?/ 한가지로 그러하면 / (날씨가) 덥거나 말거나/ 내가 가 볼 것이니/ 사람을 또 보내오/ 음식도 일절 못 먹는가? 자세히 기별하소/ 계집종은 원실에게 보내려고 하였더니/ 작은개는 보내려고 하되/ 희복이가 부디 (계집종을 이곳에) 두고 싶다고 하므로/ 란금이를 보내오/ 아이를 데려 올 때 하나는 도로 보내소/ 나는 잘 지내니 염려 마소/ 아무래도 자네가 (몸을) 많이 손상하였던 것이니/ 그렇게 편히 지내지 못하면/ 매우 (몸이) 상할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하여 병이 나지 않게 하소/ 한 가족이 (떨어져) 각각 있으니 민망하거니와/ 이 두어 달이 얼마나 지나며 벌써 그리 된 것을 어이할고?/ 걱정 말고 지내소/ 온 (물건) 것은 자세히 받내/ (당신에게) 간 것도 차려 받으소/ 너무 바빠 아무 데도 편지를 아니 하오/ 이만. 7월 8일에 명보.'

이 편지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 선생이 부인 정매랑(鄭梅娘, 1604-1655)에게 보낸 것이다. 위 편지의 수신자 정매랑은 우복 정경세(1563-1633)의 막내 따님이다. 영남의 정경세 선생이 막내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연산 돈암서원을 방문했던 이야기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정경세 선생이 돈암서원에 도착해서 세 명의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젊은 선비들은 공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 편안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비들은 느닷없는 낯선 어른의 방문에 각기 대처하는 모습이 달랐다. 한 사람은 그대로 누워 있었고, 한 사람은 반쯤 일어나 예를 갖추었고, 한 사람은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정경세 선생은 이 세 명의 젊은 선비 가운데 반쯤 일어나 예를 갖춘 선비를 사윗감으로 낙점하였다. 그가 바로 송준길이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 방문하였다 하더라도 그대로 누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춘 것보다는 반쯤 일어나 중용의 모습을 취한 선비를 사윗감으로 무리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송준길 선생이 사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윗사람은 물론이고 아랫사람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는다. 몇 장 전해지고 있는 송준길 선생의 한글 편지 가운데 손자며느리 안정나씨(김호연재의 시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반 존대 '하소체' 말로 썼다.

이 편지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①당신의 편지를 보고 매우 기쁘다. ②아들 석대(碩大)의 병이 또 났다는 소식을 접하니 매우 끔찍이 놀랍다. ③석대의 병이 한결같아 차도가 없으면 날씨가 덥거나 말거나 내가 가보겠다. 음식도 일절 못 먹는지 자세히 기별하라. ④당신이 몸을 많이 손상하였을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병이 나지 않게 하라. ⑤가족이 각각 떨어져 있으니 매우 민망하다. ⑥ 내 걱정 말고 잘 지내고 있고, 당신이 보낸 물건 잘 받았고 내가 보낸 것도 잘 받으라.

편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동춘당의 둘째 아들 석대(碩大)의 질병에 대한 걱정이다. 결국 석대는 6세가 되던 1636년에 천연두와 힘들게 싸웠으나 요사하고 말았다. 석대도 제대로 성장하였더라면 '광(光)'자 돌림의 이름을 족보에 올렸을 것이다. 1636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이다. 시국도 어수선하고 힘든 상황에 아들도 천연두로 죽어 나가니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즈음에 부인과 떨어져 살고 있었던 송준길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 힘든 상황을 함께할 수 없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그 무엇으로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까? 조선 후기 관료로서의 송준길의 모습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한 통의 편지에서처럼, 자식의 질병과 그 상황을 겪어내고 있는 아내, 그 아내에게 미안함과 걱정을 전하고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한마디의 말에서, 아내 정매랑은 남편의 무한한 사랑과 위로를 느꼈을 것이다. 가족과 부부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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