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 지방부장 byun806@daejonilbo.com

그림시장은 한미디로 요지경 속이다. 보통사람 눈에는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 천문학적 액수에 거래된다. 미술 경매장은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록 경매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신기록 작성의 연속이다. 지난 3일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뭉크'의 '절규'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 1992만 달러(1354억 원)에 낙찰됐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박수근의 빨래터 45억 2000만 원보다 30배나 높은 액수다. 워낙 차이가 크다 보니 비교가 무의미하다. 이쯤되면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절규'의 경매가를 놓고 '해외토픽'쯤으로 시큰둥해 여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문화계와 미술동네는 지난 17일부터 10월 21일까지 런던 국립초상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이중그림 작가인 김동유의 '엘리자베스 VS 다이애나'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미술한류의 좋은 징조로서 의미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전이라는 타이틀도 그렇거니와 함께 전시하는 작가들은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길버트 앤 조지 등 기라성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다. 모두 글로벌 미술시장의 불루칩 작가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츠 스타의 메달 획득 못지않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김동유만 초대됐다니 우리 미술문화 수준이 한 단계 격상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그는 순수 국내파란 점 또한 흥미를 갖게 한다. S대와 H대를 나와야 제대로 인정받는 국내 화단에서 지방대를 나온 화가다. 필수 코스나 다름없는 유럽이나 미국 유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진가가 더 값지게 여겨진다.

K-Pop이 지구촌 곳곳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우리 순수 예술이 유럽에서 주목받는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에 비해 현대미술의 역사는 고작 100년 안팎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전후한 혼란기를 제외하면 40-50년에 불과하다. 모방기를 지나 제대로 된 우리 미술의 프레임을 짜고 정체성을 갖춰 온전한 제 색깔을 내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구석이 있다.

국제무대에서 우리 현대미술은 군계(群鷄) 가운데 일학(一鶴)이 아닌 일계(一鷄)일 뿐이다. 인구 대비 미술인구가 적지 않은데도 국제 화단에서 이름값을 하는 거장은 백남준과 이우환 등 후하게 쳐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젊은 작가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수적으로 열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술동네의 자존심 문제다.

하지만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아시아 미술을 석권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글로벌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문명을 일궜던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중국인 특유의 예술가적 기질, 구슬을 꿰듯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컨설팅과 마케팅까지 접목하면서 세계 미술시장측의 뉴욕에서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탄탄한 기반을 바탕 삼아 중국 화단의 40-50대 화가군은 봄철 황사처럼 글로벌 화단을 향해 미술문화 영토 넓히기에 골몰하고 있다.

순수 국내파 화가 김동유의 영국 상륙은 순수예술의 한류바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중그림' 또는 '픽셀 모자이크 회화'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안해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작가가 아니던가. 팝아트나 비디오아트가 그렇듯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융합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김동유 역시 전통의 회화 기법인 붓질을 통해 대중적인 스타와 정치인의 얼굴을 기호화하고, 그것을 조합해 또 다른 스타와 정치인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시각 놀이, 또는 퍼즐 맞추기 같지만 국내·외 화단에서는 '진화된 팝아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엘리자베스 VS 다이애나 역시 이중그림 기법으로 1106개의 고(故) 다이애나 비의 작은 얼굴 그림으로 대형의 엘리자베스 여왕 얼굴 이미지를 구성한 작품이다.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국내 생존작가 중에서 최고가를 기록했고 영국 초청 전시만도 이번이 세 번째다.

한류(漢流) 화풍(畵風)을 한류(韓流)로 대응하면서 글로벌 화단을 공략하지 않으면 문화선진국은커녕 후진국 언저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왕두, 팡리쥔, 장샤오강 등 40-50대 화가 그룹이 떠받치듯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유능한 화가들이 부지기수다. 그 선봉에 선 40대 화가 중 한 사람이 김동유다. 미술 학도 하면 통과의례나 다름없는 유학조차 한 적이 없는 순수 토종 화가인 그의 정신적 토양이 충청도여서 여간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게 아니다. 그리고 만리장성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 설 제2·제3의 백남준·이우환·김동유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