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헌 정치행정부장 seekim@daejonilbo.com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령 선거 240일을 앞둔 지난달 23일 대선 예비후보 등록이 개시되면서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잠룡으로 불리는 이들의 용틀임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주자들이 하나 둘 씩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판이 커지고 세간의 관심도 집중되는 모양새다.

일단 경선판에 불을 당긴 곳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오래 전부터 '미래권력'으로 불려온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가운데 4·11 총선 승리의 여파로 주도권을 잡고 있다. 때문에 박 위원장을 필두로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대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이재오 전 특임장관, 안상수 전 인천시장, 김태호 의원 등이 경선에 뛰어들 전망이다. 또 장외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도 거론되고 있다. 다분히 지난 1997년 신한국당 시절의 '9룡 쟁투'를 떠올리게 한다.

야권에서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당선자를 비롯해 김두관 경남지사,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의원,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경선을 노리고 있고,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심상정, 이정희 공동대표와 노회찬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장외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언제, 어느 곳으로 뛰어들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위에 거론된 인물들 가운데 누가 당내 경선을 통과해 대선 후보가 되느냐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 여론상으론 박 위원장을 정점으로 안 원장, 문 당선자가 '빅3'로 나타나고 있지만 경선의 의외성을 생각하면 제3의 인물이 나오지말란 법은 없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전국순회경선을 통해 초반 여론의 불리함을 딛고 대역전극을 펼친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이번엔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주주격인 박 위원장 측의 경선 룰 변경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논의가 주춤하지만 여타 '비박'주자들이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에서도 완전국민경선제를 앞세워 강공을 펴는 상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최고의 관심사야 누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고, 결국 누가 대권을 차지하느냐는 것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각 당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투명하느냐, 그리고 반칙과 불복이 없는 아름다운 경선과 본선이 진행되느냐의 문제다. 이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드는 일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우리의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결정과정은 오욕으로 점철돼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의 조력자이자 친구인 노태우 대통령을 후보로 선택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3당 야합이란 비난을 감수한 끝에 후보가 됐다. 불복의 압권은 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이었다. 이회창 대세론에 밀린 이인제 후보는 끝내 탈당과 창당을 통해 독자출마를 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노무현 후보에게 밀리자 중도 하차하면서 경선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정몽준 의원은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선거 직전에 지지를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 이달 중으로 여야가 전당대회를 통해 당 조직을 정비하고 19대 국회의 원구성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정국이 도래한다. 각 당이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에 들어가 늦어도 8월이면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문제는 앞으로 2~3개월 새 벌어질 잠룡들의 행보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다면서 입신양명이나 권력을 탐하는 이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경선 와중에 뛰쳐나오는 이도 없었으면 한다. 과거를 회상하면 줄세우기를 한다거나 외압이 있다거나 보이는 않는 손이 있다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경선에 승복하지 않았던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번 여야의 경선에 참여하려는 이들을 보면 신산을 겪은 이들이 많다. 총선이나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이력이 있다. 단번에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잠룡이 하루아침에 잠룡이 된 게 아니다. 기회가 한 번 뿐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꺼번에 이루려 하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망가진다. 잠룡이 잡룡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왜 후보가 되려는지, 왜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는지를 늘 생각하고 중도에 그만두는 일 없이 완주를 해서 진정성을 보여라. 그래야 그에게 기회가 오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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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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