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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편지 4

2012-05-01기사 편집 2012-04-30 21: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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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첨부사진1정경세 편지 원본
'내여 보내고/ 그려하난 얼굴을 생각고 안잔노라/ 커와 딸 자셕은/ 부모를 멀리 잇게 삼겨시니 엇디하료/ 네 어마님은 편히 와 이시니 깃브고/ 나난 졈졈 하려가니 분별마라/ 졍일이도 할마님 떠나기를 셜워하더라 하니 더 어엿브다/ 원대란 갈왜디마오 글 배호라 닐러라/ 요요하야 대강만 뎍노라/ 오월 망일 부'

이 편지는 경상도 상주에 사는 우복 정경세(1563-1633)가 충청도 회덕 땅 송준길(1606-1672)에게 시집간 막내딸에게 보낸 것이다.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송준길과 송준길의 부인 진주정씨(1604-1655)가 살고 있는 회덕의 집으로 송준길의 장모 진성이씨(퇴계 이황의 종손녀)가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진성이씨는 딸의 집 회덕을 왔다가 상주 본가로 돌아가 남편에게 딸자식의 근황을 자세히 보고하였을 것이고, 그러저러한 사연을 전해들은 친정아버지는 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 한 통의 편지에 담아 보냈다. 비록 간결한 내용의 편지이지만 부정(父情)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깊다.

이 짧은 편지 글은 많은 내용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첫째, 동춘당가의 족보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정일(靜一)이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정일은 바로 8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한(1627.3.18.-1634.6.7.) 송준길의 딸이다. 송준길은 일찍이 '학당산묘표'와 '상녀광기'라는 글에서 정일의 죽음과 무덤의 위치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한 바 있다. 정일은 외할아버지 정경세의 기년상제(1633.6.17. 졸)를 치르기 위해 부모를 따라 상주 외가에 갔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3일 만에 죽었다. 아마도 무더운 여름 날씨와 긴 여정으로 인해 어린 아이는 지쳤을 것이다. 송준길은 정일이 서너 살이 되어서부터 민첩하게 말을 하고 '천자문'을 물어보면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슴없이 대답하여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고 회고하며 애통해하였다.

둘째, 여자들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시대 여성들은 특수계층을 제외한 일반여성들은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을 사용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전통시대 여성은 이름 없이 살았다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편지에서 보듯이 '정일'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송준길에게는 정일의 뒤 을해년(1635)에 태어난 여자아이도 있었는데 '이름을 짓기도 전에 죽었다는(不及名而夭)' 송준길의 '학당산묘표' 진술을 뒤집어보면, 여자들도 다 이름을 지었다는 반증이 된다.

셋째, 자녀의 아명(兒名)이 보편화되었다. 아명은 기록물에 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한글편지를 읽다 보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편지에 거론된 '원대'는 송광식(1625-1664)의 아명이다. 송광식에게는 7세에 천연두로 죽은 동생 석대(碩大)가 있는데, 석대도 제대로 성장하였더라면 '광(光)'자 돌림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원대는 정일보다 두 살 많은 오빠이다. 이 편지의 봉투에 수신자를 '송셰마 집'으로 쓰고 있는데, 이때는 송준길이 세마 벼슬을 제수한 1630년(인조 8)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편지 속 원대(광식)의 나이는 여섯 살임을 알 수 있다. 외할아버지 정경세는 딸에게 "원대란 갈왜디마오 글 배호라 닐러라"라고 부탁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편지는 시집보내고 딸을 그리워하는 친정아버지의 자애로움,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외손녀 정일이가 외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슬퍼했다는 것에 대한 기특함, 여섯 살 된 외손자 원대가 공부는 안하고 까불고 놀기만 하는 것에 대한 걱정 등등이 진솔하게 전달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딸자식 시집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지금과는 달리 한 번 떠나보내고 나면 좀처럼 만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보니 그리운 마음을 이렇게 편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월은 어린이날, 스승의 날, 어버이날 등 나를 둘러싼 많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 많은 달이다. 조선에서 온 한 통의 친정아버지 편지를 읽으면서, 그리운 아버지를 불러본다.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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