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호 건양대 군사학과장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에 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은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만 하는 직업적 책임을 안고 있다.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잘 가르치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운명적으로 스승이어야 하기에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상대편에게 알고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요구만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못하면 나는 잘 가르쳤는데 상대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고, 잘 하면 내가 잘 가르쳤거나 혹은 상대편이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과연 이처럼 쉽게 내가 잘 가르쳤고 대상자가 우수하거나, 혹은 나는 잘 가르쳤는데 상대편이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인가?

우선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통상 잘 가르치는 사람을 명강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명강사들 모두를 우리가 기억하는 스승님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스승님은 명강사가 갖고 있는 능력 이상의 무엇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명강사는 지식의 전달을 통해 감동을 주지만, 스승님은 지식은 물론, 지혜나 영혼을 채워주는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지혜란 명강사로부터 일방적으로 전수받는 지식의 덩어리만이 아닌, 스승과 제자가 감성적, 인격적 교감을 통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듣기 힘든 말이지만 어릴 적에 늘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었다. 스승님은 존경심의 대상이었고, 같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명강사는 입으로 가르치는 사람임에 반하여, 스승님은 존재만으로도 깊은 가르침을 주는 분이었다. 스승님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아도, 제자가 스승을 보면서 깨우침이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분이었다.

얼마 전까지 직업군인이었던 본인이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미국의 직업군인들과 짧은 3-4년의 근무를 통해서 그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다. 근무하는 동안 미군의 상관들이 장교들이나 한국군의 부하들에게 무엇을 똑바로 하라는 교육을 받은 느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통상 군이라는 조직체에서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을 갖다 보니, 이것이 지나쳐 본인이 해야 할 분야는 소홀히 하고, 하급자가 해야 할 것만 강조하는,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한미연합군사령관 리언 라포트 대장은 그때 새롭게 만들었던 한미연합작전계획을 본인이 직접 한미 장군들이나 장교들에게 브리핑해 주었던 독특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00년 동안 한반도 작전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으로 시작하여, 왜 그러한 방책을 채택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 한국이나 미국의 젊은이들이 불필요하게 피를 흘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답변에 이르기까지 웅변적으로 이어지는 라포트 한미연합군사령관의 브리핑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라포트 사령관은 부하에게 결코 관대하지만은 않았다.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도 무섭게 질책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군인으로서 라포트 사령관은 일거수일투족에서 부하들에게 경외심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한 경외심은 말로써 가르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부하들에게 요구하고, 더불어 소통하고, 강력한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존재 자체로부터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옛 스승님이 존재만으로도 가르쳤었던 기억을 미국의 직업군인들도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대목이었다.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을 외국군 장교로부터 느끼면서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더불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스승님이라는 단어가 매우 낯설어진 것은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환경의 변화로부터 비롯된 결과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부모로서, 조직의 일원이나 상사로서,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누군가를 가르쳐야만 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다시 한 번 옛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불편한 현실을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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