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이환태 목원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등장하여 모지락스럽게 상대를 공격해 대던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거 낙선하였다. 명분이야 어떻든 그들의 언행을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는 걸 피할 길이 없었다. 너무 극단적이어서 그들 앞에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취급되지도 않는 듯했다.

이제 극단적인 언행은 단지 정치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자신의 입장과 다른 일에 대해서는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일이 흔해졌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는다 해서 분신자살을 하기도 한다. 한 겨울 추위에 높은 크레인 위에서 몇 달을 버티며 시위를 하기도 한다. 이 역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의 입장이 무엇이기에 이런 사람들은 그것을 목숨과 바꾸려 한단 말인가?

사람이 무리지어 살다 보면 하나의 일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상대방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양보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끝까지 대립하면서 두 진영은 서로 상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생각을 굳혀버리고 거기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은 곧 절대적인 진리와 같다.

절대로 상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일러 독선(獨善)이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행여 어느 틈엔가 허점이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선은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생각은 곧 그의 신이 되어버린다. 모지락스러움은 바로 이 독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지락스럽게 극단적이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보면 거상 안토니오는 친구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유독 고리대금업을 하는 샤일록이라는 유대인에 대해서만은 아주 모지락스럽게 대한다. 그는 샤일록의 고리대금업을 비난하면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욕하고 발길질하며 심지어는 침을 뱉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서 돈을 빌리려는 친구의 보증을 서게 된다. 삼천 다카트를 기한 내에 갚지 않으면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샤일록이 갖는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절대로 금전적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차용증서에 서명했건만 사람일이란 꼭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갑자기 파산한 안토니오는 자신의 살 한 파운드를 샤일록에게 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모욕하기를 밥 먹듯 하던 안토니오의 오만과 독선에 대해 복수하리라 마음먹은 샤일록은 모든 사람들의 설득에도 전혀 굽힘없이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만을 요구한다. 그동안 핍박받은 데서 오는 원한이 사무쳤겠지만, 이 또한 독선이 아닐 수 없다.

안토니오 주위의 친구들이 원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주고 소를 취하하라고 말해도 샤일록이 듣지 않자 재판관이 판정을 내린다.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는 샤일록의 것이니 그것을 떼어낼 준비를 하라." 이에 샤일록은 숫돌에 칼을 갈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칼을 드는 순간 재판관은 샤일록에게 또 말한다. "살 한 파운드만을 떼어내야지 더 떼어내거나 덜 떼어내도 안 되거니와 그 과정에서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살 한 파운드를 떼어낸다는 것은 첨단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1 파운드를 조금 넘거나 모자란다. 우연히 정확하게 일 파운드의 살을 떼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확히 일 파운드인지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장 정밀한 저울로 달아야 하지만, 그 저울도 정밀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그것보다 더 정밀한 저울이 필요하고 그 저울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확히 1 파운드의 살은 우리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개념이다. 독선과 아집에서 나오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근거로 해서 상대방에게 모지락스럽게 대한다거나 죽기 살기로 끝장을 보려 한다면 어찌 피곤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치는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