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전 선문대 교수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다. 긴긴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서 살갗이 터지는 아픔을 견디며 꽃을 피우고 잎이 솟아나는 자연을 비유한 말이다. 이런 계절에 우리에게도 잔인하리만큼 치열한 선거전을 치렀다. 선거를 하다 보면 승자와 패자가 나타나게 되고 웃는 쪽과 우는 쪽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선거에 대한 논공행상이 따르게 된다.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반드시 부족하다거나 못난 것은 아니다. 인격이 훌륭하면서도 선거에 패배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현상이다. 선거철에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정당임을 자처하면서도 참패를 면치 못한 것은 외풍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이 자초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체로 유권자들은 그들이 한 게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 더욱이 당의 지도부가 똘똘 뭉쳐도 어려운 싸움인데 지도부가 찌그럭거리는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유권자들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생각해 보았는가. 작은 정당이 싸우는 모양새만 보이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또한 제1야당의 행세를 보면 마치 선거 전략이 잘못돼서 여당에 패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선거 초반에는 압도적 과반수도 충분할 것이라고 충만해 있었다. 정부에서 불법민간사찰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그것은 먹혀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대 정권에서 사찰을 해온 것으로 국민은 인정하고 있다. 암암리에 사찰을 해왔고 그것을 정치에 활용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유독 현 정부에서만 사찰을 한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으니 먹혀들 리가 없었다. 오히려 막말 파문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공천 과정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인기에 편승하는 전략적 공천이 신뢰를 줄 수 없었다. 대체적으로 국회의원은 그 지역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괜찮은 인물이라는 평을 받아야 한다. 그만한 인물이면 지역의 대표로 인정할 만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너무 설익은 애송이를 후보로 내세워서야 국민을 조롱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후보자야 그렇다 치자. 야당도 국가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권력집단이다. 그들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반정부 집회나 심지어 불법 집회 현장에 지도적 야당 국회의원이 꼭 끼어 있었고 시위나 데모를 중재하기보다 부추기는 인상만 주었다. 또한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거나 노인들은 투표하는 날 `효도관광이나 보내라`는 말투가 서슴없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노년층들이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2030세대만 믿는다고 될 일이었던가.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노년층들이 본때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왜 산업시대의 주역들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비아냥거리거나 비하하는 말을 쏟아 놓는 것인가. 그렇게 막말을 했던 그들도 이제 60대가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공천 과정에서 잘못이 인정되어 후보를 사퇴한 그가 무슨 염치로 마이크를 잡고 핏대를 올리며 정권심판을 외치고 있는가. 그것은 역효과였다. 그리고 야당공조라도 해서 의석을 확보하려 하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한솥밥이라 여기고 있었다. 적어도 정권을 바꾸고 싶다면 연합이니 공조니 하기보다 자신의 정책과 조직으로 밀고 나갔어야 옳았다. 정강정책이 다른 신생야당과 연합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운 오리 새끼만 만들어 놓은 꼴이다.

또한 야당 대표는 말을 잘하는 웅변가였다. 그런데 여성답게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호소해야 했는데 오히려 앙칼진 항변으로 비치고 말았다.

오늘의 여당은 과거 10년 세월을 기다리며 천막당사를 꾸리고 석고대죄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살아나지 않았던가. 수권정당이 되려는 정당이라면 작년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마땅히 후보를 내세웠어야 했다. 한 개인에게 빌붙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도 승리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코미디를 보는 듯싶었다. 여당의 박 비대위원장이 선거의 여왕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만의 능력이라기보다 야당의 자충수가 도와준 꼴이 아닌가.

이제 대선정국으로 올인할 시점이 되었다. 야당에 대통령 후보감이 없어서 안철수에게 목을 매야 하는가. 그는 검증된 것이 없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에게 일시적 인기에 불과하다. 야당은 보다 철저한 정책개발로 여당보다 더 국민을 위한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늘 외세에 불안하게 살아온 민족이다. 공짜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처럼 국가가 위기에 처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여야를 불문하고 대선공약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총선에서 공약한 복지부분만이라도 무슨 돈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밝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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