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아 변호사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모두들 추위와의 사투에 지쳐 갈 때쯤 이제 신록의 계절, 봄이 찾아왔다. 따뜻한 햇볕과 생명들의 기지개, 이제 겨울은 간 것이다.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언제 물러갈까 싶었던 추위와 흐린 하늘은 사라지고 이제 따뜻한 햇볕이 조만간 찾아올 무더위를 어느새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겨울의 힘이 급격히 사라짐을 느끼며 성큼 다가온 봄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한 걸음 옆의 봄의 힘도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잔혹한 범죄가 우리에게서 봄의 기쁨을 빼앗아 갔다.

지난 1일 밤 112센터에 걸려온 다급한 여성의 신고전화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난데없는 괴한의 습격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잠깐의 틈을 빌려 피해여성은 112로 신고전화를 했으나, 결국 피해여성은 다음날 아침에 잔혹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한밤중의 습격, 잠깐의 틈을 빌린 신고전화, 그리고 눈뜨고 보기 힘든 잔혹한 범죄의 발견.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무섭고 잔인한 것이었다.

그 이후 연일 이 잔인한 범죄의 전말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혀 그 분노로 생긴 우발범죄라는 가해자의 거짓 진술, 112센터에 걸려온 전화의 통화시간이 1분 20여 초에 불과하다는 거짓 발표, 그리고 범죄현장에 탐문수사를 펼쳤었지만 무응답으로 결국 되돌아왔다는 발표 등. 모든 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물들인 소식뿐이었다.

이 사건은 마치 도시괴담같이 차마 현실로 믿기에는 너무 잔인한 범죄 방법에도 모든 이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나, 그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피해여성이 생명이 위급한 그 순간에도 마지막 구명줄을 잡는 심정으로 112에 전화를 했으나,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우리 모두가 믿고 있던 매직 넘버는 아무 마법도 부리지 못한 것이었다. `범죄신고 전화는 112.` 이 간단한 구호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위기의 순간에 아무 의심 없이 그 번호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매직 넘버의 진실은 너무나 참혹하게 입증되었다. 그곳에는 신고전화에 대한 대응 매뉴얼, 신속한 보고 체계와 대응, 그 무엇도 없었다.

알고 보니 112 지령요원은 교육도 없이 배치되었으며, 알고 보니 긴급 사건에 대한 대응 시스템과 보고 체계도 강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공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연결되었다. 매직 넘버는 없었다. 우리는 위험 앞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며, 어디를 믿어야 하는지 등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인처럼 박혀 있었던 마치 하나의 상식이었던 것은 힘을 잃었고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치안에 대한 두려움으로까지 연결되어, 큰 혼돈을 양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혼란을 정리하고 다시금 매직 넘버에 대한 믿음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현재 경기지방 경찰청은 긴급사건 초동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112 신고 대응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고 한다.

112 지령요원을 풍부한 경험과 함께 긴급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난 인력으로 교체하고, 시스템의 분리로 혼선을 주었던 112센터와 상황실을 통합 운영하여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나, 지금이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잠재적인 피해자를 위해서도 다시는 이런 안타깝고 슬픈 범죄의 희생양을 막기 위해서도 말이다.

112센터에 대한 정비는 시작되었으나,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그 끝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도 매직 넘버에 대한 믿음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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