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학과 교수

1등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한다. 승자독식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보의 유통이 빨라지면서 1등 상품으로 쏠리는 현상은 더욱 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승자독식은 경제용어가 아니고 전쟁용어다. 몽고의 군대는 전쟁에서 이기면 가축과 부녀자를 약탈하고 포로를 잡았고 원나라에는 고려의 왕세자가 볼모로 북경에 끌려가서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하여 강제로 혈연을 맺었다. 임진왜란에는 왜군들이 조선인 12만 6000여 명의 귀나 코를 전리품으로 베어다 묻어 놓은 `귀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장기판에서 볼 수 있는 초나라와 한나라는 기원전에 중국에 있던 국가이다. 초나라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선전했고, 또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다. 이처럼 모순은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처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과연 일본이 항복했을까? 첫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서도 일본의 군부 강경파들은 가미가제 정신으로 돌파하자는 주장을 했고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일본 천황이 항복을 하기로 정한 다음에 강경파 군부의 대장은 자결을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파죽지세로 진군하는 왜군에 맥없이 무너진 조선의 방어군과 임금 선조가 평안북도까지 도망간 이유는, 일본이 가진 조총이라는 신무기가 큰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 조총의 위력을 경험했던 조선은 이후 조총부대를 창설하고 총기 개량에 돌입하는 등 군비 확충에 몰두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적이 가진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이라는 첨단 무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국방연구는 최첨단을 목표로 진행해야 한다. 2등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의 성격이므로 다소 경제성이 부족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성이 중요한 시장경제에서는 2등이 살아남을 공간이 어느 정도 남아 있고 만년 2등이 1등을 제치고 강자로 올라서는 일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라는 기술은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그것을 분해하여 작동하는 원리를 파악하고, 유사한 제품을 내놓는 기술이다. 우리나라의 기술은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면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추격 산업에서 1등 산업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 일본 소니의 컬러 TV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애쓰던 삼성전자는 이제 갤럭시폰으로 애플의 아이폰을 상대로 전 세계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1972년에 시작된 조선산업 육성의 초기에는 선박의 생산을 위한 작업지시도인 일품도(piece drawing)를 포함한 모든 설계도면과 철판까지도 수입해서 우리는 오로지 용접공의 땀으로 경쟁력을 삼는 노동집약산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이제는 수심 2000m 깊은 바다에서 석유를 채굴하는 첨단 드릴선과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LNG선박의 건조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미국 첨단연구프로젝트국(ARPA)은 1958년 러시아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로 받은 충격 이후에 미국 내에서 국방 관련 첨단 연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시킬 것을 목적으로 국방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각 대학은 국방연구에 전념하였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은 고체연료 로켓을 개발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은 근접접촉 신관을 개발했고 시카고 대학은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서 플루토늄 제조를 도왔다. MIT도 역시 원자탄 개발에 참가했지만 더욱 비중이 있었던 연구는 레이더 장비에 관한 연구였다. 미국의 대학들은 2차 대전과 그 이후의 냉전기간을 통해 연구중심대학, 대학원중심대학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는 대학의 역할을 교육보다는 연구가 중심이 되게 만들어 대학에서의 연구 규모와 조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국방연구는 전쟁을 통해 사람의 목숨을 살상하는 원자폭탄이나 생체실험을 행하는 연구자의 윤리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총성 없는 전장이라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첨단 상품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을 1등 상품을 만드는 일은 전쟁에서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최고의 명품 방패를 만드는 국방연구와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세계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1등 기업들도 세계 최고의 기술들로 무장해야 하므로 국방연구와 함께 첨단연구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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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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