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얼마 전 TV에서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패티김의 은퇴를 기념해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를 부르며 경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중 소냐라는 가수가 '사랑의 맹세'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녀가 부른 노래는 특별한 데가 있었다. 단지 노래만 잘 부른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수화를 익혀서 수화 동작과 함께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것은 청중들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할 것도 없이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그 마음씨와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수화를 익힌 힘든 과정이 청중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냐의 노래를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첫째는 기다림에 관한 생각이었다. 현대 사회는 무엇이든지 빠르게 효과를 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제대로 된 것이 나오려고 하면,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것이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냐는 청중들에게 조용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청중들이 그 노래의 가사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청중들은 소냐에게서 시원스럽게 불러내는 가창력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냐는 천천히 노래에 몰입해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처음 부분을 수화와 함께 풀어갔기 때문에 기다림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째는 희생에 관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희생은커녕 힘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로채려는 사기꾼들이 득실대는 세상이다. 소냐는 '푸른 밤하늘에 달빛이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한 것, 찬란한 태양이 그 빛을 잃어도 사랑은 영원한 것. 오, 그대의 품 안에 안겨 속삭이던 사랑의 굳은 맹세'라는 아름다운 가사를 수화로 표현해 내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힘들게 배웠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사는 그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기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 소냐는 그러한 어려움을 남들이 쉽게 흉내 내지 못할 희생 어린 수고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

희생과 기다림. 둘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각광받는 가치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희생과 기다림이 더 많은 감동과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것은 주목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 보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말씀이 있다. 농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땅에 뿌려진 씨가 발아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는지 안다. 땅에 떨어진 씨는 땅의 습기와 영양분을 먹고 자신을 희생할 때, 씨 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력이 발아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성경에 씨가 죽는다고 표현된 의미이다. 만약에 씨가 땅속에서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밀알 하나는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은 기다림과 희생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장 적은 자본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효율적인 경제학을 추구한다. 누가 그것을 나무라겠는가? 그것이 정당한 방법에 의한 것이라면, 더군다나. 그런데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현대 사회는 정말 제대로 된 경제적인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희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급하게 열매를 따려고만 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희생하려고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밀알 하나가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경제학이 아니겠는가? 성경에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이 있다. 나무가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 맺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좋은 열매라는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는 좋은 나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좋은 나무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좋은 열매를 맺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는 바로 우리가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진리를 무시하는 데서 기인한다. 밀알 하나가 희생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역설의 효율성을 신뢰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이제 좋은 나무에서 맺히는 밀알 하나의 경제학에 주목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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