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09-06-23 06:00:00
 12면기사
대전 재발견 - (20) 정부대전청사
한밭에 우뚝 솟은 ‘정부’ 대전 발전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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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대전을 방문해 “정부부처 가운데 상당수를 대전 둔산 신도시로 이전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원도심에 있던 각종 공공기관 대부분이 둔산 신도시로 옮기겠다고 경쟁하듯이 용지공급을 신청하던 와중에 대통령이 정부부처까지 옮기겠다니 둔산 신도시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시민들에게는 대전이 ‘제2의 행정수도’가 되거나 ‘국토의 중핵도시’가 된다는 이상이 실제로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가질 만도 했다.

이렇게 되자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불편한 심기와 불만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대전은 자녀교육 시키기에 마땅치 않고 문화향유기회도 턱없이 적다”는 게 그들의 핑계. 상당수가 지방출신인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우월한 서울과 열위의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전 발언이 치밀한 정부정책으로 뒷받침됐던 게 아닌데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반발이 먹혀들어갔는지 대전으로 이전할 중앙행정기관은 청(廳)단위 기관 9개로 결정, 그해 9월 발표됐다. 관세청을 비롯해 조달청, 특허청, 중소기업청, 산림청, 철도청(현 코레일), 병무청, 통계청,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었다. 국가기록원까지 포함하면 10개 기관이 이전대상에 포함됐다. 상당수가 서울 강남과 강북의 대형 오피스빌딩에 세 들어 있거나 비좁은 사무실로 인해 불편을 겪던 외청들로, 독립된 청사를 마련해 이전하는 게 절실한 외청들이었다. 반면 권력운용에 핵심적인 외청으로 여겨지는 대검찰청, 국세청, 경찰청 등 힘센 외청들은 빠졌다.

4300여명의 9개 외청 공무원들도 불만을 표시하기는 중앙부처 공무원들과 마찬가지였다. 자녀교육과 문화향유기회, (출장 등에 있어)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나 9개 외청의 대전 이전은 변동 없이 추진됐고, 3년 뒤인 1993년 9월 대전 서구 둔산동 920번지 현지에서 역사적인 기공식을 가졌다. 총 416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끝에 1997년 12월 20층짜리 빌딩 네 동이 우람하게 버티고 선 정부대전청사가 위용을 자랑하며 준공됐다. 1998년 7월부터 한 달여 동안 통계청을 시작으로 마지막 관세청까지 순차적으로 ‘대대적인 이사’를 마쳤고, 9개 외청은 곧바로 정부대전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정부대전청사는 서울 세종로청사, 경기도 과천청사에 이은 세 번째 종합청사여서 한동안 ‘제3청사’라고 불렸다.

정부대전청사 1동에는 관세청, 문화재청, 중소기업청, 산림청이 입주했고 2동에는 철도청과 국가기록원, 대전청사관리소와 나중에 들어온 감사원 대전사무소가 들어갔다. 3동에는 조달청 통계청 병무청이 입주했으며 특허청은 4동 전체를 쓰고 있다. 특허청이 4동을 통째로 쓰는 이유는 직원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보존해야 할 각종 특허관련 서류의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서류의 무게도 엄청나, 4동은 이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특별하게 설계됐다.

53만8337.90㎡라는 방대한 부지에 건축면적은 2만7729.29㎡로 전체의 약 5.5%에 불과하다. 정보통신 및 빌딩자동화 시설이 완비된 20층 높이 네 개의 빌딩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기는커녕 사방이 탁 트여 보이는 쾌적함과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1층부터 3층까지는 한 건물이고 4층부터 네 개의 빌딩을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지어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4층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3층 옥상을 걸어서 다른 빌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 한 가운데 중앙홀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탁 틔어 있어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중앙홀 지붕은 모두 유리로 돼 있어 자연채광 된다. 각 빌딩 19층과 지하 1층, 후생관에 총 7개의 식당이 있으며 약국, 의무실, 서점, 이발소, 미술관, 체력단련장, 사우나시설, 대강당 등 조그만 타운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다. 경찰로 구성된 정부대전청사 경비대가 따로 있고,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는 헬리포트도 야외에 설치돼 있다. 매일 평균 1300여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정부대전청사 완공과 9개 주요 외청 이전은 이들 공무원은 물론 대전 시민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짐을 싼 뒤 가족들은 수도권에 놔둔 채 단신으로 대전에 왔던 외청 공무원들은 대전과 둔산 신도시의 쾌적한 정주여건, 열악하지 않은 교육·문화여건을 느끼고 대전에 정착해 가는 중이다.

지난해 대전발전연구원이 정부대전청사 재직공무원 4800여명 가운데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96.5%가 대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제 수도권으로 숨 가쁘게 통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나머지 3.5%도 충남·북 거주자가 대부분이다. 전체의 45.1%가 대전에 자기 명의의 집에 살고 있고 전세 40.4%, 월세 4.7%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46.0%가 도보로 출퇴근한다고 답해, 절반 가까이가 둔산 신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또 자기 월급의 80%가량을 대전에서 쓴다고 대답했다. 이를 토대로 역산해보면 연평균 2319억원의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대전청사가 문을 연 지 10년이 넘은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전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전청사 공무원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들의 업무가 지방행정이 아닌 전국단위 행정인데다 인사·각종 정보수집 등에 있어 늘 상급부처가 있는 과천과 서울 세종로 등지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방공무원보다 정치권 동향에도 민감하다. 생활은 대전에서 하면서도 눈과 귀는 서울로 향해야 하는 처지이다.

전남이 고향이라는 특허청의 한 서기관은 “출퇴근에 한 시간 넘게 걸리던 서울보다 여러 모로 살기 좋다. 아이들도 둔산에서 학교 다니고 있어 대전 사람이다. 나도 대전 사람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됐다”면서도 “아직도 밀접한 관계인 지인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있다. 빠져서는 안 된다는 모임이 주중에 서울이나 과천에서 열린다고 연락이 올 때 가장 곤란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의 한 서기관은 “퇴직한 선배들 보면 대전권에 재취업할 자리가 없어 결국 서울로 다시 간다”며 “대전이 주거환경과 교육열은 손색이 없지만 자녀의 대학진학을 생각하면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결국 내 마음도 자식 따라 서울로 간다”고 말했다.

보통의 대전 시민들과 약간 다른 성향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정부대전청사는 섬 같은 곳은 아니다. 일상에서 대전에 녹아들어와 있다. 다른 점이 있지만 서로 상당한 부분이 대전과 ‘교집합’인 정부대전청사.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대전 발전의 선도적 기능을 해주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류용규 기자 realist@daejonilbo.com

자료사진=대전일보 DB·정부대전청사관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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