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진주 건양대병원 진료운영팀 간호사
설진주 건양대병원 진료운영팀 간호사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을 하면서 부인과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암 환자들은 항암약물치료를 시행하기 때문에 3주 간격으로 입원치료를 받아 먼 친척보다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항암치료로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오랜 시간 입원 동안 가까워질 수 없는 환자도 있었지만, 가족같이 가까운 사이처럼 지내는 환자도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 만날 수는 없는 분들이지만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필자보다 어린 환자였는데 키도 크고 귀여운 얼굴을 가졌다. 청소년 시기 난소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늘 씩씩하던 친구였다. 그 예쁜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마음이 아팠는데 내 동생과 같은 나이여서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며 우울해하곤 했는데 그럴 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씩씩하게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자 어린이날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투병 기간에 뇌로 전이된 암 덩어리가 시신경을 눌러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많이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 씩씩하던 친구가 무섭다며 어디 가지 말고 자기 옆에 있어 달라고 했었는데 옆에 많이 있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 했었는데 임종 간호를 하며 "고생했어. 좋은 곳에 가서 편하게 살아"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고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또 한 분을 더 소개하고 싶다. 이분도 참 주삿바늘 찌를 만한 혈관이 없기로 유명했던 환자였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인해 온몸이 부어 혈관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혈액검사를 할 때마다 나와 환자분은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혈관을 찾아 혈액검사를 하면 서로가 기뻐했었다. 필자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으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가 샌드위치나 우유를 사다 주거나 집에서 가져온 밥을 주기도 했다. 환자에게 음식을 받지 말라고 했으나 거절하면 환자분이 상처받을까 해서 같이 면담실에서 식사하기도 했었다. 그후 온몸에 전이가 돼 더 이상 항암치료의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담당 교수님의 소견에 요양병원으로 전원 가기 위한 전날이였다. 잠시 외출 후 귀원하면서 잔뜩 싸서 온 밥과 국들을 간호사 스테이션에 내려놓으셨다. 환자가 먹어보라고 권해 억지로 몇 숟가락 떠먹는 모습에도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며칠 뒤 상태 악화로 요양병원에 가지 못한 채 응급실에 입원했고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져 뽀글머리 가발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필자는 항상 아픈 환자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환자들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환자분들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켰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미숙한 대응에 항의를 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있었고, 일 처리가 느릴 때 기다려주지 않고 화를 내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실수를 용납해주는 환자도 있었고 미숙한 업무능력에도 너그럽게 넘겨주는 환자도 있었으며, 밥을 못 먹고 바쁘게 일할 때면 간식을 챙겨주시는 환자들도 있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게 하는 환자도 많았지만 별 것 아닌 거에도 감사하다고 말하며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시는 환자도 많았다. 이런 환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에 내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 많이 환자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간호사, 편안하고 안전하게 간호를 하는 유능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 

설진주 건양대병원 진료운영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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