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건양대병원 교육전담간호사
이은정 건양대병원 교육전담간호사

인생의 1/3이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면서 함께 웃기도 울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환자에게 제일 좋은 간호란 뛰어난 스킬과 간호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변화를 빨리 포착하여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진 8시간의 근무시간 내에 빠른 속도로 일을 다 해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1분 1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고, 자연스럽게 환자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외면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루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입원하게 된 할머니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정말 호흡곤란으로 오신 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그 어떤 의료행위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안정제를 투여하고 싶어도 고령이었고, 혹시나 생길지 모를 호흡부전이 우려되어 약물 사용도 제한적이었고, 당장이라도 침대 밖으로 뛰어나갈 기세에 낙상 사고라도 생길까봐 신체보호대를 적용해둔 상태였다. 어찌나 소리를 지르시는지, 의식이 있는 일부 환자 중에서 좀 조용히 하게 하라는 불만도 터져나왔지만, 불안하여 격리병실로 옮길수도 없고, 일반 병동으로 옮기기에는 아직 불안정한 상태였던지라 지나가던 의사나 간호사 모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이었다. '바빠죽겠는데 왜 저러실까?'라는 불만 가득한 마음을 갖고 그 환자분에게 다가가서 환자의 손을 잡으며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라고 물어보았다. 환자가 걱정되었다기보다는 빨리 이 상황을 종결시키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환자분이 필자의 손을 꼭 잡으면서 언성을 낮췄다. '어? 진짜 어디가 불편하셨던건가?' 라는 생각에 좀 더 다정하게 환자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치며 손을 맞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환자는 정확한 진단은 받지 못했지만 평소 허리가 불편해 똑바로 눕는 자세가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 올라오자마자 환자를 똑바로 눕히고 이것저것 처치를 하더니만 다 끝났는지 다들 말도 없이 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픈 허리에 자세를 변경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득달같이 달려와서 '이게 빠지면 위험하니까 좀 가만히 계시라'며 타박만 하고 자기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나를 침대에 묶어놓지 않았냐고 서운함이 목소리에 가득 묻어 나왔다.

아차 싶었다. 얼른 환자에게 사과드리고, 편안한 자세로 변경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자, 환자는 금세 안정을 찾았습니다. 안정제도 신체보호대도 필요없었다. 처음부터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 환자는 며칠 후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필자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꼭 건강하게 퇴원하시라는 인사를 건넸지만, 할머니의 미소에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라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식히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그런 저를 향해 미소지어준 할머니에게 죄송스러웠다.

좋은 간호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어렵지만 간호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사실이며, 간호는 대상자와의 상호 교류 및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간호대상자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까지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먼저 따뜻하게 손을 맞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이은정 건양대병원 교육전담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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