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은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어려운 경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었으나 소비는 여전히 부진하여 자영업자들이 어렵고 코로나 시기에 팽창했던 벤처 부문에 돈줄이 마르면서 이 부분에서 희망을 찾았던 청년들이 적지 않게 일자리를 상실했다. 최근에는 다른 악재들이 추가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것, 그리고 최근 국내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 관련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경제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핵심은 '수출'과 '기업'이지 민생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K칩스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국가전략기술 분야인 반도체, 2차전지, 백신, 미래형 이동수단, 수소 등에 시설투자를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각 최대 15%, 35%까지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여기에 이것저것 혜택을 더하면 특히 대기업은 30%까지도 세액 공제를 챙길 수 있다. 대기업이 막대한 규모의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유보금을 먼저 쓰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조세 정의를 훼손하며 세금을 깎아줄 것이 아니라 장기 저리의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국가가 민생을 위해 재정을 풀어야 할 시기에 세수결손을 야기할 혜택을 대기업에 퍼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69시간 근로제는 더욱 심각하다. 몰아서 일한다고 몰아서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선택권을 준다는 논리로 밀어붙이는 것은 민생을 앞세우는 정부가 할 법한 경제정책은 아니다. 현 정부가 기업인들, 경제단체장들과는 소통하고 그들의 민원을 들어주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현 정부가 '민생'의 내세울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경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수출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 전범기업들이 자행한 강제노동에 대해 최근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내놓은 것도 수출, 기업을 위한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주요 부품과 자본재 등을 수입하고 있으므로 쓸데없이 자존심 부리지 말고 실리를 취하자는 메시지를 내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대안을 찾는 등 과도한 일본 의존성이 완화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굴욕적 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정책, 최선의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수입국인 우리가 일본의 '갑'일 수 있다는 점을 왜 놓치고 있을까?

'수출'과 '기업'에 혜택을 몰아주면 국가 경제 전체에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뿌리 깊은 고정 관념, 위기가 닥쳐오면 기업을 살려야 하니까 다른 경제 주체들은 희생해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에 기반한 정책으로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수출과 기업만을 위할수록 국민은 방치될 것이고 방치된 국민이 각자도생에 나서게 된다면 결국 공동체는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