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DISTEP) 원장

정부는 지역 과학기술 진흥과 이에 기반한 혁신을 위해 2000년 초 이후 매 5년 단위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을 정부 주도로 추진해왔다. 지역은 중앙정부 계획에 맞춰 지자체별 이행 계획을 만들어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정부의 종합계획은 지역 특성과 현장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계획에 머물렀고, 지역은 과학기술혁신 역량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지역 주도로 과학기술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고, 실제 최근 대전·부산 등 여러 지역과 정부의 정책 전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1일 발표된 정부의 '제6차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2023-2027)'(이하 제6차 종합계획)은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해 지역의 자생력 강화와 과학기술 혁신을 핵심 내용으로 담았다. 제6차 종합계획은 17개 지자체의 산학연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립위원회를 통해 초안을 마련하고, 권역별 공청회, 지자체, 지역연구개발지원단 회의 등을 통해 지역 중심으로 내용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지방소멸 위기, 디지털 전환 시대에 지역이 과학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지역산업과 지역사회를 혁신함으로써 진정한 균형발전 시대를 개막하는 것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역이 주도하는 과학기술 혁신 추진체계 구축', '지역 혁신주체의 성장·연계를 통한 지역 혁신 가속화', '지역 혁신을 뒷받침하는 민간 주도의 생태계 활성화'라는 3대 추진전략을 제시하고 9대 추진과제를 도출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제6차 종합계획을 통해 전략과 과제의 추진 주체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 주도로 전환되고 있으며,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에서 지역의 역량·환경을 종합 진단해 지역별로 특화된 세부 과학기술혁신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지역별 계획을 바탕으로 지자체 수요와 우선순위에 따라 R&D 및 관련 혁신사업을 기획하고, 관련 중앙부처가 협의를 통해 지원하는 정책 체계로 전환된다. 그러한 체계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대전·부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전담 기관을 확대해 지역 주도의 신산업기획, 조사분석진단, 글로벌 융합혁신생태계 조성 강화 등을 중점 추진한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의 과학기술 혁신 기반 신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에 필요한 지역 산학연 공동 연구개발 투자, 혁신기업 지원, 기술창업 지원 등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기획과 융합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대전은 나노반도체, 우주, 첨단바이오, 국방분야 등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미래산업기술지도 구축과 지역 산학연 공동 기획, 원천기술의 실증 사업화, 실험실 창업 확대, 융합연구혁신공간 조성, 글로벌 도시 협력 등을 통해 대덕특구와 지역이 연결된 혁신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지역주도 과학기술혁신정책으로의 전환을 선도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역의 협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거버넌스와 법, 제도적 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정부가 제6차 종합계획과 함께 17개 지자체와의 협력, 지역 주도 의제 발굴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과학기술전략회의를 새롭게 구성해 운영을 시작한 점, 지역과학기술혁신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점, 지역에 대전과학산업진흥원 같은 과학기술 전담 기관을 확대하려는 점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변화다. 진정한 지방시대를 향한 정부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지역에서 현실화하고 주도적으로 확산해야 하는 과제가 지역 혁신 주체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DISTEP)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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