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나만의 PC 만들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PC 케이스를 선택하고 마더보드, CPU, 램, 하드 용량, 그래픽카드 등의 부품들을 구입해 조립해서 만든 나만의 PC는 속칭 덕후들의 로망이었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모듈(Module)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생활 속에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맞춤형, 주문제작, 비스포크 등은 모듈의 또 다른 변신이다. 디지털시대의 빠른 변화는 소비자의 요구를 역동적이게 한다.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은 3D프린팅의 출현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대체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바야흐로 다품종 대량생산시대다.

기존의 일반화되고 규격화된 소비자의 요구는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의 생산을 주도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강제적 소비패턴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이젠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와 트렌드가 다품종의 생산을 요구하지만 그에 동반하는 경제성이 문제 돼 왔다.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모듈이다. 개념은 심플하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맞춤형 혹은 주문형 제품을 모듈화로 대량생산 하겠다는 얘기다. 이것이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이다. 모듈이라는 용어는 건축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모듈의 사전적 의미는 건물·가구·기계 등을 구성하는 규격화된 부품 또는 시스템의 독립적 구성단위로 정의하지만, 건축공간을 구획하는 기준이 되는 치수나 유닛을 뜻한다.

모듈은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제가 만든 르 모듈러(Le Modulor)라는 측정체계를 일컫는 용어다. 르 꼬르뷔제 모듈은 크기와 공간 분할의 기본단위를 말하지만 현대건축에서 모듈은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돼 크기에 기능으로 건축단위를 분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아파트 구성요소인 거실, 안방, 주방, 욕실, 현관, 다용도실 등으로 세분화 해 각각의 크기와 기능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자. 기존의 A타입, B타입 등으로 제한되는 획일화된 아파트 평면에서 벗어나 소비자는 다양한 구성요소의 모듈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고, 건설회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의 모듈을 사용해 조립만 해주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파트 각 세대는 플랫폼이 되고 거실, 안방, 주방 등은 모듈화돼 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행위가 바로 커스터마이제이션이 된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방식의 가전제품, 이케아의 조립식 가구 등 지금의 생산주류는 모두 모듈을 활용한 맞춤형이다.

모듈러 건축은 역사적으로는 일본의 쿠로카와 키쇼가 1972년에 선보인 직방형 캡슐을 쌓아올린 나카긴 건물로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이며 몇 년전에는 중국에서 19일 만에 57층 건물을 테트리스 방식으로 건축해 화제를 끌기도 했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는 미국의 700여개 호텔을 모듈러로 건축 중이며, 미국 건설업체 90% 이상이 이미 모듈화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모듈러 건축의 특징은 건식공사로 인한 압도적 공사기간의 단축, 친환경 재료 선택에 따른 조립 및 해체가 용이해 매우 작은 환경부화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뉴욕의 32층 아파트, 영국의 44층 아파트, 프랑스 건설회사가 1899개의 모듈을 조립해 지은 싱가포르의 140m의 아파트가 모듈러 공법으로 건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하다. 경기 행복주택의 용인 13층 모듈러 주택, 서울 중랑구 15층 모듈러 주택 등이 시공 중이며 계획 중이다. 얼마 전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로 인해 유명해진 네옴시티의 핵심기술도 모듈러 건축이다.

이제 우린 인터넷쇼핑을 통해 건축 모듈을 선택하고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의 모듈을 찾아 익일 배송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 반나절만에 주택 조립이 가능한 시대가 바로 눈앞에 있다. TV의 홈쇼핑에서 모듈러 건축을 판매하고 아마존과 쿠팡이 건설업을 주도할 시대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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