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지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올랐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진력하고 선전하여 '1%의 가능성'이 절대 작지 않음을 보여줬다.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기쁨 속에 묻힌 슬픔을 되돌아볼 때다. 붉은 악마도 참사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치겠다"라고 하지 않았나!

슬픔은 이태원에만 있지 않다. 카타르 축구 경기장을 세우다 페르시아만의 뜨거운 태양 아래 쓰러진 수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있다. 그들의 고향은 네팔,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자체 조사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 관련 사망 이주노동자는 작년 한 해 50명, 중상자는 500명이 넘는다. 카타르가 중동 최초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된 2010년 이후 그 나라에서 객사한 네팔 노동자만 모두 2100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는 일곱 자녀의 아빠도 있다. 그가 열사(熱沙)에서 한 시간에 받은 돈은 1달러. 곧 결승전이 열리는 루사일 스타디움은 10억 달러짜리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카타르 월드컵 스타디움을 건설한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매우 생뚱맞다.

과거 30년 동안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간 네팔 국민은 전체 인구의 1/4이 넘는다. 그들이 보내오는 송금은 네팔이 한 해 거두는 소득의 1/4을 차지한다. 그래도 네팔 국민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카타르의 1/22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보면 상위 10% 부국들의 평균 소득은 하위 50% 빈국들의 평균 소득보다 38배 많다. 현재 지구적 불평등은 서구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20세기 초 수준에 근접한다.

불평등은 지구온난화에서 가해국과 피해국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타르와 네팔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65배 차이가 난다. 카타르의 평균 온도는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해 국제사회가 정한 상한선을 넘었지만,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이기도 한 카타르는 그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 자국민과 가축들을 '에어 컨디셔닝'하고 있다. 구직을 위해 카타르의 사막을 찾아온 해외 노동자들과 그들이 본국에 남기고 온 가족들은 그 '쿨링 존' 밖에 있다.

축구공의 생산과 소비 역시 불평등을 보여준다. 전 세계 축구공의 2/3 이상은 파키스탄 북동쪽 한 도시에 있는 약 1000개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말이 공장이지 그곳에서 생산되는 공의 80% 이상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공 조각을 꿰매는 것이다. 3시간의 바느질 끝에 공 하나를 완성하여 받는 돈은 약 75센트. 이들의 한 달 소득은 기껏해야 45달러로 생계비의 반도 안 되며, 이들이 생산하는 카타르 월드컵 FIFA 공인 축구공 가격의 1/4밖에 안 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여성의 열악한 처지는 파키스탄에서만 목도되지 않는다. 지난 9월 이란에서는 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위 '도덕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의문사를 당했다. 물론 이란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1979년부터 존속해온 가혹한 복장 규정에만 있지 않다. 세계경제포럼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이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남성의 약 1/5 수준이며 임금은 약 1/2 수준이다. 종합적으로 남녀평등에 있어 이란은 146개 평가대상국 가운데 143등이다. 99등인 한국에 비해 44계단 낮다. 히잡을 찢고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선택의 자유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가난과 고물가 그리고 부패에 지친 이란의 남녀노소 모든 이와 연대하여 정치적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란 축구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서 국가(國歌) 제창을 거부함으로써 이 저항에 동참했다.

글을 마치며 국제관계를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인식과 더불어 아픔과 슬픔의 영역을 넓히고 공감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졸고를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지운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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