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으로 기업들 자금 조달 비용 급증
금융권은 부동산 PF 등 대출 조이기 나서
내년 SOC 예산 축소로 더 심각해진 업계
정부, 위기만 수습하기보다 중장기 대책 절실

최태영 취재2팀장
최태영 취재2팀장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거시경제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국내외에서 우리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고금리 기조,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6개월째 무역수지 적자 등 경영 환경이 좋지 않다.

여기다 고금리 정책으로 인한 시중 통화량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나오고 있다. 국내 통화량은 지난해 7월 3439조9642억원에서 올 들어 9월 3745조7085억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최근 1년간 여섯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통화량은 1년 새 300조원 이상 늘었다. 물가 인상을 잡겠다는 취지로 고금리를 통한 유동성 축소를 유도했으나 되레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김진태 강원지사의 레고랜드 채무보증 불이행 사태가 금융시장의 신용 경색에 기름을 부었다. 신용 경색으로 돈줄이 말라가는데다 강원도가 대출보증을 서고도 빚을 대신 못 갚겠다고 말을 바꾼 마당에 어느 회사의 보증인들을 믿을 수 있겠냐는 불안 심리가 시장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힘들어졌다.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도 안팔리기 때문이다. 자금 경색을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50조원+알파' 대책을 내놨는데, 이마저도 금융시장에서의 신용 회복은 불투명하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필두로 회사채 등을 매입해 주도록 정부가 독려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정부의 신용과 맞먹는 국책은행인 산은 역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투자자들이 신뢰도가 높은 산은 채권에 쏠리면서 기업들이 발행하는 어음이나 채권시장은 경색되고 있다. 즉, 기업 등 민간영역의 채권 발행은 늘어나는 반면, 해소가 되지 않으며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보다 심각한 위기를 겪는 분야는 건설업이다. 러-우 전쟁으로 국제원자재 가격 인상, 건설비 상승, 미분양 급증, 부동산 장기침체 우려 등 시장이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중견 건설회사들조차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데, 시행사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자 금융권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전면 중단하거나 그 기준을 강화하며 대출 조이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권에선 부동산 PF와 관련한 개발 수수료로 7%의 높은 이율을 적용하고 있다. 대출 자체도 어려운데다 높은 수수료까지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고금리다. 부동산 개발사업의 상당 부분이 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금리가 높아지면 PF 자체의 부실화가 우려된다. 국내 PF 규모는 2013년 말 36조원에서 2022년 6월 말 112조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은행권 PF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반면 보험,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 증권 등 2금융권의 비중이 높다. 규모를 늘렸던 금융사들에 대한 우려도 커지면서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로 이어질 경우 2011년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설상가상 정부의 내년 SOC 예산도 감축 기조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11월 기준 내년 SOC 예산은 올해보다 10.2%(2조8470억원) 감소한 25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SOC 예산 감축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SOC 예산 감축은 건설 수주액 감소로 이어진다. 예산 감축은 발주 감소로 이어지고, 공사 현장과 인력 감축도 뒤따른다. 결국 한국경제의 핵심인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도 내년 'SOC 예산 증액'을 요청한 상태지만 정부의 감축 의지가 확고하다.

OECD는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4%대인 중국은 차치하고, 2%대인 유럽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추경호 부총리는 "우리의 대외건전성은 괜찮다"며 해외 변수 탓만 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 중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중장기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만 수습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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