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이런 건 츰 해봐." "나이 칠십 넘게 먹고서 별 걸 다 하네." 어르신들과의 대화 서막이다. 천안녹색소비자연대(이하 천안녹소연)가 진행한 이날 인터뷰에서 어르신들이 쑥스럽게 경험담을 꺼내 놓은 대화의 주제는 '월경.' 한 어르신은 월경을 숨겨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밤에 몰래 동네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친구와 함께 생리대를 세탁했다고 회고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어떨까? '당당하게 피 흘릴 권리 월경권' 인터뷰에서 한 청소년은 생리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인식했지만 중학생이 된 뒤 학교에 다니면서 본인도 모르게 부끄러워하는 듯이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년은 "학교에서 생리대 교체하러 화장실 갈 때도 생리대를 주머니에 숨겨서 빨리 갔다 온다"며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고 전했다.

월경권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기본권이자 생존권이다. 세계 각국은 여러 정책으로 월경권을 보장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뉴욕주에서는 공공기관 월경용품 무상비치 법안이 통과됐다. 월경용품 보편 지급은 이후 14개 주로 확산됐다. 2018년 케냐는 공립학교 청소년에 무료 생리대를 배포했다. 2021년 뉴질랜드는 모든 초중고 학생들에게 월경용품을 무상 제공했다. 지난해 일본은 청소년 월경용품 무료 배포 예산으로 13억 5000만 엔을 편성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40억 원이다. 스코틀랜드는 지자체와 학교 등 공공시설에서 올해부터 월경용품 무상지급을 전면 시행하고 있다.

천안녹소연에 따르면 천안의 무료 생리대 자판기는 천안시청소년수련관, 태조산청소년수련관, 성정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자유공간 청다움 3호점, 천안시학교밖지원센터 비치가 전부이다. 월경권을 기본권이자 생존권이라고 부르기에 형편없는 수치다. 낙인 효과 때문에 무료 생리대 자판기 이용을 꺼리는 문화도 있다. 월 1만 2000원을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는 월경용품 구입비 지원 대상자도 천안시 만 9~24세 여성 중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에 한정됐다.

청소년복지법 제5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생리용품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제 보편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살림의 문화를 위하여 소득, 거주지, 연령, 성적 지향, 장애와 상관 없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의 실현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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