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밝히다 - 대전 출생 손미 시인]

"20대와 30대 때는 세상의 기준이 오로지 '저'였어요.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점점 '우리'로 시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끄적이거나 낙서하는 걸 좋아했던 작가 손미. 그는 그 시절 여고생처럼 팬이 직접 쓰는 소설인 '팬픽'을 즐겨 썼다. 수학도, 체육도, 규칙도 싫었던 그는 여느 때처럼 창가에 앉아 낙서하고, 편지도 쓰다가 글을 쓰자고 마음 먹었다. 소설이 쓰고 싶어 입학한 문예창작학과에서 과제로 쓰던 시가 점점 좋아졌다. 그러다가 2009년 본격적인 시인의 길로 들어섰고 5년 만에 '양파 공동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같은 해 '양파 공동체' 시집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 올해 14년차를 맞는 손미 작가는 그의 '길'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따뜻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20-30대 '나'라는 중심에 서 있던 손 작가는 잉태의 과정 속 자연스레 '우리'라는 시선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제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모든 일의 중심이 저였기 때문에 글 쓰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며 "그런 생각이 잉태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에서 '우리'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중심이 아니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 각자만의 사정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계관이 점점 확장된 손미 작가의 길 속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고 답했다. 바로 '진정성'이다. 시인 스스로 성장하지 않고 안주한 작품 속에는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으며 작품을 읽는 독자 역시 공감하지 못해서다. 그는 "시인이 계속해서 시집을 내놓으면서 또 다른 확장과 세계관, 깊이를 보여줘야 한다"며 "기존에 시인이 써왔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면 같은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관과 방식을 쓰기 위해선 많이 읽고, 경험하고, 생각하며 시인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며 "그렇게 확장된 세계관은 작품 속 진정성으로 그대로 녹아들고 독자들도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고 공감도 해준다"고 강조했다.

내년에 출간을 앞두고 있는 손미 작가의 시집 주제는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오늘날 미움과 혐오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상대의 약점을 뜯어내야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시인으로서 매우 아팠다"며 "저 또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았고, 그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랑은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지 마음의 회복을 얻게 된다"고 했다.

특히 시기와 혐오가 난무한 시대에 손미 작가는 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수영 시인이 '오늘날 시의 목적은 인간성 회복이다'이라고 말했듯이, 이 시대에 시의 역할은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눈을 확장시켜주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나아가 시를 통해 상처에 대한 치유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문인계에 대한 걱정도 내비쳤다. 그는 "계속해서 젊은 시인들이 양성되고, 양성된 시인들이 지역에 남아야 하지만 현실의 벽에 무너져 지역 내 젊은 시인이 없는 상황"이라며 "시나 소설, 동화 등 문인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전에도 많은 시인들과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스토리텔링이 있지만 그것을 활성화하는 움직임이 없어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지역문인계의 앞날을 밝혀주기 위한 지자체의 관심이 다소 아쉽다는 것이다.

시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시인이 되면 원고 청탁도 들어오고 글을 볼 기회도 많아질 줄 알았지만 막상 시인이 되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며 "초보시절 혼자 시를 쓰는 등 외로움과의 싸움을 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꾸준히 오래 쓰다보니 알아봐주는 분들도 점차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분들도 제 글을 읽어주고 찾아주셨다"며 "한방에 빵 터지는게 아니니, 시인을 꿈꾸는 후배들이 조급함을 갖지 말고 오랫동안 썼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길 위에서 희망을 주는 메시지인 셈이다.

끝으로 손미 시인은 '계속 쓰는 시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손 시인이 말하는 '계속 쓰는 시인'은 단순히 시집을 계속해서 발간하는 시인이 아닌,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가며 확장된 시각을 작품에 녹일 수 있는 시인을 뜻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안주하고 싶고, 아는 것만 활용하고 싶은 저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그런 저를 계속해서 달래기도 하고, 채찍질도 하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도전하면서 나를 확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 확장 속에 얻은 것이 자연스럽게 글로 이어져 이전의 글보단 깊어지고 세계관이 확장된 시인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2009년 등단' 손미 시인은…

대전에서 출생한 손미 시인은 학창시절부터 소설가의 꿈을 꾸었다. 그는 한남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고, 소설을 쓰려고 입학한 학과에서 과제로 쓰던 시가 점점 좋아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2009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본격 등단했다. 이후 5년 만인 2013년 '양파 공동체'라는 시집을 냈고, 출간한 시집으로 인해 문인계에서 손꼽히는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18년 시집이 아닌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을 내놓기도 했으며, 한해 앞선 2017년에는 작사가로 데뷔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19년 6년 만에 두번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를 냈고, 지난해 산문시집 '삼화맨션' 출간이 손미 작가의 최근 마지막 활동이다. 현재 손 작가는 문화체육광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과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함께 밟고 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한 시집의 주제로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학력사항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재학

◇수상 및 저서 활동

2009. 07. 월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2013. 12. 제3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2013. 12. 시집 '양파 공동체' 출간

2018. 10.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출간

2019. 05.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출간

2020.3 - 2023.3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2021.11. 산문시집 '삼화맨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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