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구타, 가혹행위를 당해 숨진 고(故) 윤승주 일병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4년 군대 내에서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해 사망한 '윤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확정되며 최종 패소했다. 다만, 폭행의 주범인 가해병사의 배상 책임은 대법원에서도 인정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윤 일병 유족이 선임병 이 모 씨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가해자인 이 씨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하고 국가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상고심 절차 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이 별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원심판결을 확정하는 제도다.

경기도 연천 육군 28사단 예하 포병대대에서 근무하던 윤 일병은 2013년 말부터 4개월가량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린 끝에 2014년 4월 숨졌다.

윤 일병은 병장이었던 이 씨를 비롯, 병장 하 모 씨, 상병이었던 이 모 씨, 지 모 씨에게 가혹행위와 집단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이 씨 등은 윤 일병에게 가래침을 핥게 하고 잠을 못 자게 하는 등 가혹 행위를 가혹행위를 하고, 종교행사에 못 가게 강요하거나 침상에 던진 과자를 주워 먹도록 하는 등의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씨 등은 윤 일병이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자, 그동안의 폭행 및 가혹행위가 밝혀질 것을 우려해 피해사실이 적혀 있거나 범행과 관련된 윤 일병의 소지품을 버리기로 공모한 뒤 수첩, 스프링 노트 등을 분리수거장에 버린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와 함께 이 씨 등 선임병은 윤 일병이 생활관에서 소리 내며 음식을 먹는다거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얼굴과 배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이 씨 등은 윤 일병이 냉동 음식을 먹다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고 의료진에게 진술하고, 조사 과정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주범인 이 씨는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 40년을, 나머지 공범들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5-7년씩을 확정받았다. 하사 유 씨는 징역 5년, 병장 하 씨와 상병 이 씨, 지 씨는 각각 7년 형이 확정됐다.

군검찰은 당시 윤 일병의 사인을 '기도폐쇄에 따른 질식사'라고 밝혔다가 군인권센터의 폭로 후 뒤늦게 '과다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좌멸증후군' 등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에 유족은 군 당국이 윤 일병의 사인을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에 따른 뇌 손상'이라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폭행 및 가혹행위에 따른 사망으로 변경한 것을 두고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주범 이 씨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과 2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1심은 "당시 군 수사기관의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가가 주의의무를 위반해 위법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국가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다만 가해병사 이 씨의 배상책임은 인정했다. 1심은 윤 일병의 부모에게 각 1억 9953만 원을, 윤 일병의 누나 2명에게 각 5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또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 씨가 유족들에게 1심과 같이 총 4억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지급해야 하는 시점을 1심보다 한 달 앞당겼다.

윤 일병 사건 국가배상소송 대법원 상고심 심리불속행기각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유족은 이날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배상소송은 군에 의해 진상 규명이 가로막힌 유가족의 마지막 선택지였지만, 사법부 역시 진상에 관심이 없었다"며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는 "판사라는 사람들이 기록도 보지 않고 재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기록만 봐도 뻔히 알 법한 이야기도 몰랐고, 판결문에 승주가 숨진 상황도 제대로 적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고 지적했다.

안 씨는 "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으나 심리도 해보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며 "이게 재판 거리도 되지 않는, 별것 아닌 일이냐. 대법관들이 보기에는 정말 그런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승주의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려 했던 이들은 (비록) 법의 심판은 받지 않았지만 가책을 느끼기를 바란다"며 "일평생 우리 승주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사법적 절차는 끝이 났어도 다른 방법을 통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매형 김모 씨는 "사법부가 외면한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판 과정을 거치며 확보한 자료를 공개해 모두가 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018년 윤 일병 사건 관련 조사를 시작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과 다른 판단을 한다면 그 또한 쟁점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면 재심에 대한 부분도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윤 일병이 복무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2017년 12월 국가유공자(순직군경)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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