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 곁의 산 자들 (헤일리 캠벨 지음 / 서미나 옮김 / 시공사 / 400쪽 / 2만2000원)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배운 생의 의미
죽음의 세계를 탐구하는 저마다의 여정을 위해

'죽은 자 곁의 산 자들'

우리는 죽음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법은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죽음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는 자극적인 죽음의 순간만 보여주며 죽음 이후의 일은 쉽게 생략한다. 세상은 죽음의 단면만 보여줄 뿐 구태여 죽음의 실체를 보려 하지 않는다.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의 저자 헤일리 캠벨은 열두 살에 죽음이 '순간'이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 캠벨은 하천에 빠진 반려견을 구하려다 익사한 친구 해리엇의 장례식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성당 의자에 앉아 하얀 관을 응시하던 그는 누군가 해리엇의 시신을 건져 수습하고 성당으로 옮겨 처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캠벨은 장의사와 특수 청소부 등 다양한 죽음의 일꾼에게 매료됐고, 기자가 되어 그들을 찾아 나섰다.

캠벨은 사산 전문 조산사 클레어를 만났다. 클레어는 산모의 배 속에서 이미 죽었거나 태어나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아기를 받는 일을 한다. 클레어가 근무하는 병원은 일반 분만실과 사산아 분만실이 분리돼 있는데, 죽은 아기의 산모와 가족들이 아기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충분히 안내하고 아기의 손도장과 발도장, 사진 등을 넣은 추억 상자를 만들기도 한다. 클레어와 같은 사산 전문 조산사들의 섬세한 노력은 그 자체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자 산 자에 대한 예의다.

테리는 교육·연구 목적으로 기부되는 시신 '카데바'에 대한 해부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테리는 해부 실습을 위해 골 절단기 등 의료장비를 이용해 시신을 분해하고, 의료진들의 수술 연습이 끝나면 해부된 시신들의 얼굴을 되돌렸다. 테리에게 이 시신들은 환자나 다름 없었다.

테리와 클레어 같은 사람들이 죽은 자 곁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선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죽음을 마주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자의 한계를 정하는 주체가 타인이나 사회규범이 아닌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은 죽음의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첫 발을 뗀 이들에게 진실하고 친절한 초대장이 돼 줄 것이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